젊은 시절에 누구나 빌딩 숲과 인파로 북적이는 도시를 동경한다. 자기 안의 꿈을 더 넓은 세상에서 펼쳐 보이고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동경했던 도시가 더 이상 삶의 무대 전체가 아님을 느끼게 될 때, 그래서 자신의 꿈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될 때, 사람들은 한가로운 시골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초록이 가져다 주는 편안함과 타인과의 부대낌이 적은 그곳에서라면, 지금껏 살아보지 못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열뜬 희망에 다시금 들뜨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오래된 꿈처럼 간직한 채 갑갑한 도시 생활을 운명처럼 또는 숙명처럼 느끼며 무감각하게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느끼는 한계는 환경이 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닐까.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목가적인 전원생활이란 그들만의 생각일 뿐,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갈등과 반복,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사람이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서로의 마음의 빗장을 풀고 뒷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하나만 있다해도 사는 일이 그리 팍팍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심마을은 천복을 받은 사람들의 고장이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벽을 쌓고, 사람이 사람을 향해 마음의 빗장을 지르는 요즘같은 세상에, 마음을 연다는 뜻의 마을 이름이 벌써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듯이 서로가 서로를 마음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이 꽃처럼 곱다해서, ‘화심’이라 불렀다고도 하지 않는가.
개심은 향양리의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 개심 본동과 후동, 이렇게 2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1947년 1월 1일 향양리에서 분동하였다.
개심마을 사람들은 마음만 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터마저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 일명 대문이 없는 마을이다. 본동과 후동 모두 마찬가지다. 서로의 생활과 살림을 훤히 꽤뚫고 있으니 자랑할 일도 경계할 일도 없는 듯.
높은 담장과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드는 거대한 대문을 달고 위웅을 자랑하는 도심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이 마을을 어떻게 이해할까? 갈수록 그 수요가 늘어 새로운 사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최첨단 보안 시스템이 이곳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의 거추장스러운 장치인 것이다.
믿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이 고장만의 내력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 하는 부분이다.
약 40여년 전만 해도 개심마을의 주소득원은 노지엽연초, 노지고추, 명주, 삼베였으나 지금은 벼농사는 물론 감과 밤, 그리고 하우스 시설재배를 많이 한다.
보릿고개를 넘으며 간신히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시절에도, 선조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서 미천면에서도 인재가 가장 많이 배출된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지 자연마을의 걱정거리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교통 문젠데, 지난 1997년 개심 뒷산으로 도로가 확포장 되면서 향양리와 반지리 주민들의 교통불편이 웬만큼 해소되었다고 한다.
후동 북쪽에는 여러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불리는 이름들이 돼지와 연관된 것들이 많다. 독골은 산 모양이 돼지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일명 저곡이라고도 불리며,
돼지콧댕이는 말 그대로, 앞산에서 보면 그 생긴 모양이 돼지코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천면 사무소 가기 전에 보이는 성인봉은 개심에서 오방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 다래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심 본동과 후동 입구에는 세상을 향한 손짓인 듯 큰 정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그늘이 주민들에게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휴식처다. 일손이 바쁜 농번기에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식히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기도 하고, 막걸리 한 사발에 사는 이야기가 질펀해지는 곳. 주민들이 서로 모여 음식과 술과 마음을 나누는 장소이니 어느 집 안방이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있을까.
속에 있는 말을 풀어놓지 못해 마음이 갑갑하고 사는 일이 허무해 질 때, 자기 속을 다 내보이고 있는 개심마을을 하릴 없이 서성거리고 있는 심정이 든다. 가다가 힘이 들면 정자나무 아래 잠시 쉬어가도 좋을 일. 입담좋은 동네 어르신을 만나 채 알지 못했던 동네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그러면 시원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 마음 속이 뻥 뚤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