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 죽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삶은 당연히 받아들이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리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말까지 있으니, 삶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얼마나 끈질긴가.
문명의 발달과 의료기술의 획기적인 진보는 인간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50부터가 청춘,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며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가 되었다.
하지만 산다고 다 사는 것일까? 문제는 삶의 질의 문제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바삐 달려온 사람들이, 이제는 느림의 미학에 관심을 갖고, 새삼 자연이 주는 생명력에 감탄하며 웰빙에 목숨을 걸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장수마을로 소문만 지역은 방송전파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하게 집안 일과 바깥일을 해 내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습에 TV 앞에 앉은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잃기도 한다.
이왕 사는 것 폼 나고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 여기에 누가 반기를 들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죽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향양리의 동남쪽에 위치한 장죽마을은 진교와 장죽, 이렇게 2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는데, 1963년 1월 1일 향양리에서 분동되었다.
장죽마을은 눈 뜨면 온통 산이다. 깊은 골짜기와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벽촌.
장죽마을의 본마을인 진대골은 대나무가 길게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골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마을에서 진대골 끝인 못골짝까지 1㎞가 족히 넘는다.
진대골 동쪽에 있는 진교동은 마을의 모양이 거문고처럼 생겼다고 해서 개금동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앞산에는 개금달양지라 불리는 골짜기도 있다.
이전에는 개금달양이에도 인가가 형성돼 있어서 대 여섯 가구가 살기도 햇지만, 양지라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해가 빨리 지고 교통이 불편해 지금은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상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외로움에 겨운 대나무 울음소리만 우수수 우수수 스산하게 들릴 뿐이다.
장죽 동쪽에 있는 골짜기에는 상대적으로 볕이 많았던지 큰 빛이라는 뜻의 ‘대광(大光)’이 와전된 대갱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고, 또 대갱이에서 벌당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대갱이고개라 불리운다. 대갱이고개는 일명 몽당고개라고도 불리며, 아직까지도 서낭당이 남아있어 옛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진교마을과 반지리 세곡 마을 사이에는 두 지역을 이어주는 작은 교량이 있었는데, 진교(榛橋) 또는 개금다리라 불리었다. 길이가 약 8m로 앙증맞기까지 한 이 다리는 고작 돌 네 개로 이뤄진 것이었다. 넓은 돌 한 개와 좁은 돌 3개를 연결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데, 보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제 할 일은 다하는 아주 야무진 녀석이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떠내려 가는 법이 없어, 사람들이 도깨비 놀음인가하고 의심을 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도깨비 다리라는 애칭까지 붙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직강공사로 인해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다 지난 옛날 얘기지만, 한때 진대골은 주변에서 알아주는 부자동네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나는 특산물 때문인데, 닥나무와 감, 자두 재래종을 심어 각각 1천냥 씩, 그러니 집집마다 3천냥의 소득을 올렸다는 것이다.
수확철이 되면 인근 진주를 비롯해 산청과 함양에서까지 상인들이 몰려와 작은 산골마을이 때아닌 사람들로 한동안 북적였다 하는데, 밤 수확량도 좋았는지 진대골 남쪽에는 밤나무가 많다고 해서 밤시골이라 불리는 골짜기도 있다. 
지금 마을 농가소득원은 미맥농사와 밤농사다. 지난 1980년대부터는 돈 안되는 미맥농사를 탈피해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시설채소를 재배하는 가구가 늘었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탓에 일조량이 부족해 이마저도 실패했다고 한다.
지난 70년대 말에는 새마을 운동 우수마을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보다 더 유명한 건 장죽이 장수마을이라는 점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딱히 알려진 장수의 비결도 없다는 것이다. 혹시 이유가 있다면, 해도 오래 머물지 않는 산간마을에서 좋은 공기 호흡하며 자연이 준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땅을 일군 댓가가 아닐까. 아니면 주변의 산이 가만히 귀를 막고 눈을 막아 흉흉한 세상사를 듣고 보지 않으면서 자연인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