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해방이 되면서 우리나라 전역에서는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경남에서는 1945년 8월17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도지부가 결성되었다. 이어 10월 1일에는 삼포관(동명극장)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진양지회가 결성되었다.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고, 지방건준 지부들은 인민위원회로 개편이 되었다. 지방인민위원회를 포함한 인민위원회는 해방직후 미군정을 제외하면 가장 영항력있고 강력한 정치세력이었다. 인민위원회는 지방에서 치안유지, 물자확보, 교통복구, 일제잔재 구축, 소작료 3.7제 투쟁 등의 활동을 통해 1945년 말까지는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앞서 진주시인민위원회는 10월 25일경 시가행진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인민위원회가 정부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의 비라를 살포하기도 했다. 해방직후 이같은 농촌사회의 급격한 변화 사례를 잘 보여주는 곳이 수곡면이다. 일제가 패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면사무소 관리와 지서 경찰들은 서둘러 피신했지만 미처 피신하지 못한 사람들은 린치를 당했다. 이때 대평면(大坪面)에서는 면장(面長)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방과 광복의 기쁨도 잠시, 당시 우리 사회는 극한적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심각한 좌우 갈등을 겪었다. 대평면에서도 이러한 좌우익간의 갈등이 심했는데 상촌리․대평리․당촌리․신풍리 등에는 좌익운동을 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보도연맹에 편입된 진보적 인사들이 경찰에 끌려가 학살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평면의 진보적인 인사들이 많이 죽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산천초목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민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은 대평면에도 적지않은 피해를 입혔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지리산 공비(共匪)들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입었다.
대평면에서 한국전쟁 발발 사실을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였다. 당시 신풍리 상촌마을에 거주하는 황보영과 황상규의 집에 라디오가 있었는데, 이 두사람 중 어느 누군가가 라디오에서 인민군들이 쳐내려와 전쟁이 터졌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다. 비보를 접한 이들은 당시 마을의 최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른 아침부터  최씨는 마을 앞 못둑에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고 인민군들이 남으로 내려오고 있으니 간단한 짐을 꾸려 최대한 빨리 대피하라고 알렸다.
이 소리를 들은 마을사람들은 부랴부랴 짐을 싼 뒤 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상상골로 긴급 대피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곳에서 소나무를 자른 뒤 원두막을 짓고 피난민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다. 음식은  연기가 잘 나지 않는 싸리나무로 감자를 주로 삶아 먹었다. 때로는 밀을 볶아 만든 미숫가루를 가져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경황이 없어 대부분 감자와 냄비만 챙겨 먹을거리도 충분치 못했다. 골짜기에서의 피난생활은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젊은 사람들과 달리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대부분 피난을 가지 못하고 집 뒤편에다 방공굴을 파고 생활을 하면서 인민군의 동태를 살폈다. 이렇게 전쟁이 일어난 뒤 처음 일주일간은 별다른 사건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중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또다시 최씨의 “빨리 피난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피난도 역시 일주일 가량이었다.
1950년 7월 하순 무렵 당시 인민군 제6사단(사단장 방호산)은 하동국도를 따라 진주로 이동했는데, 대평사람들은 뒤늦게야 이들 부대중 일부가 공군이산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 산을 오르면 인민군들이 판 호가 1개 연대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길다랗게 파여져 있다.
대평면에 침입한 인민군들은 대평면사무소를 기습했다. 당시 면사무소 습격사건으로 면사무소에 있던 직원들과 면민들은 황급히 도망을 쳤으나, 그중 황진원이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총에 맞아 숨졌다. 이후 상촌리를 비롯한 대평면은 인민군의 작전구역에 포함되면서 수많은 면민들이 뭇매를 맞거나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상촌회관 앞에 무릎까지 오는 붉은 색 군화에 하얀 장교복을 입은 말을 탄 인민군 장교 한 명이 부하들을 거느린채 나타났다. 그 장교는 뒤따라 오는 부하들에게 “회관앞에 내려놓으라”는 명령을 했다. 명령을 받은 인민군 2명은 말에서 각각 3명씩 6명을 땅에 내려놓았다. 이 사람들은 인민군들에게 심한 고문을 당해 인사불성 상태였다.
인민군들은 한사람씩 데려다가 회관 방안에 눕혔다. 당시 인민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한 여섯명은 마을유지이거나 대평면사무소에 근무했던 공무원들이었다. 당시 전종선과 황일용은 대평면 면사무소에 근무를 했다.
마을회관 앞에 모여있는 면민들에게 인민군 병사가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남반부를 해방시키기 위해 북에서 온 인민군이오. 저 사람들이 우리 부대에서 반동을 한 사실을 순순히 자백을 했으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 거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이들 6명은 공군이산에 있는 인민군 부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다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자 지리산에 있는 인민군 부대까지 끌고가 고문을 한 후 신풍리 상촌마을 회관까지 다시 데려 온 것이었다.
이외에도 인민군들의 횡포는 끝이 없었다. 마을 앞을 지나다가 개나 닭이 보이면 총을 마구 쏘아 잡아서는 말등에 싣고 가기도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나면서 전세가 역전되자 대평면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당시에 군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창고 방에 숨어 지내거나 헛방에 주름을 치고 살았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은 낮에 군복을 입고 신풍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고, 일부는 신풍리 상촌마을 앞 안산에 올라 보초를 서기도 했다.
인민군들이 대평면에서 철수하고 국군이 주둔한 어느 날, 상촌회관 앞에는 6명의 사람이 뒤로 손이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들은 경찰직 공무원이나 행정직 공무원, 그리고 마을유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공군이산 인민군 부대에 보고 했던 정보원들이었다.
당시 인민군에 의해 피살된 황진원과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숨진 황일용, 겨우 목숨을 건진 황보영, 전종선 등도 이들의 첩보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이처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기간 중 대평면민들은 수많은 목숨을 잃었고, 지리산 공비들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당시 도통사가 인민군 내무서로 이용되면서 많은 서적들이 불타 사라지기도 했다.
대평면을 비롯한 인근 수곡면과 명석면 등지는 지리산 공비들의 무자비한 약탈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남일보」1951년 6월 26일치 신문에는 대평면을 기습한 공비(共匪)에 대한 기사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공비들이 각처(各處)에 출몰하며 민심을 교란시키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쟁 발발 1주년 기념일인 1951년 6월 25일 오후 2시경에 대평면 상촌리와 중촌리에 공비 20여명이 침투하여 부락 경비원을 집합시킨 후 중촌부락에서는 당시 면서기였던 이영래의 집을 방화하였다. 이 불은 이영래의 가족들이 진화했다. 그 순간에 지서직원이 잠복근무하고 있던 중 불빛을 보고 총을 발사해 공비중 1명은 발에 부상을 입고 도주하였다.
당시 공비들의 침투로 인한 중촌부락의 피해상황을 보면 공비들은 이 마을 정덕채의 집에 들어가 양복 1벌과 면포를 약탈하고 한청특무대원인 남위백의 집에 침입하여 그 집의 가족들을 구타하였다. 그리고 상촌부락에 침투한 공비는 대평면 전국민회장인 김영신(당시 41세)을 납치하여 부락 주변의 도로상에서 두부(頭部)를 칼로 절단하고 도주하였다. 이에 지서직원이 추적을 했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공비에 의해 살해당한 김영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 사평마을에 있던 반공유적비이다. 상촌리 출신으로 우익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하던 김영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 비는 1961년 8월에 세워졌다.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공비들의 대평면 침투는 그 후로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1951년 7월 10일과 1951년 7월15일 또다시 공비들이 대평면에 침투했다.
「경남일보」1951년 7월 10일치 기사를 보면 10일 새벽 4시경 대평면 대평리 어은부락에 공비 78명이 침입하여 대평면사무소 총무주임 집에 침입해 양축하던 소 한 마리를 탈취했고, 정억영의 집에서는 옷가지를 훔쳐 단성방면으로 도주했다고 보도하고있다.
이어 「경남일보」1951년 7월 17일치 기사에는 「대평면 대평리 어은부락과 명석면에 수를 알 수 없는 공비들이 출현해 진주경찰서는 이서장 진두지휘하에 이들 공비들을 산청군 방면으로 격퇴시켰다. 그러나 그날밤 9시경에 무장한 공비 130여명과 비무장 공비 20여명이 지서 400m전방까지 급습했는데 본서 파견형사대와 지서원의 반격으로 새벽 2시반경 격퇴시켰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처럼 공비들의 침탈사건이 빈번해지자 진주경찰서 이정용서장은 1951년 9월 6일 대평면 내촌리에 있던 대평지서를 전략상 공비출몰 루트인 대평면 하촌리로 이전했고, 내촌리에는 출장소를 두었다. 이는 대평면의 중심지이자 공비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파출소를 둠으로써 공비들로부터 면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임시조치였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 수 있는 곳으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을과 명석면 시목마을의 경계에는 돌고개라는 곳이 있다. 이 돌고개는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 빨치산 부대의 이동통로로 이용됐던 곳이다. 이곳에서 자수를 하자는 공비와 자수를 거절하는 공비들의 의견충돌로 자수를 주장한 공비들을 사살한 사연을 갖고 있는 고개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분단이 고착화되지만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까지 청산되지 못했던 반봉건적 지주제는 한국전쟁 직후의 농지개혁에 의해 불완전하나마 청산되었다. 이로인해 대평면내 지역 주민들간의 토지소유 격차도 상당히 완화되었다.
1965년에 발간된 진양군의 면세일람(面勢一覽)에 의하면 1964년에는 소작농이 반 이상 되고 일부 대지주가 전 농지의 30% 이상을 소유하던 일제강점기와는 달리 농지소유 격차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비록 영세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농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체 1,430호 가운데 토지를 소유한 농가는 1,116호에 달했다.
대평(大坪)하면 곧바로 ‘대평 무’를 떠올린다. 대평면은 중앙부를 관통하는 경호강변에 넓게 형성되어 있는 범람원 지역이 사질토로 되어 있었고, 보(洑)를 축조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이 밭이었다. 따라서 대평면은 대곡면과 함께 밭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이같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보리나 고추 등과 같은 밭작물이 많이 생산되었다.
진양속지와 1965년 진양군 군세일람에 의하면, 토지의 면적이 전체적으로 약간 줄고 논이 상대적으로 많아지긴 했지만 절대적으로는 밭의 면적이 더 넓었다. 1920년대말 대평면의 전답은 10,420반(밭 6,193반, 논 4,227반)에 916호(戶)였고, 1964년의 전답은 10,121반(밭 5,170반, 논 4,951반)에 1,430호(戶)였다.
해방이후, 대평면의 무가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경호강변 일대인 신풍리 앞 벗들과 덕천강과 접한 대평리 한들에서는 앞다투어 무를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렸다. 1964년 당시 진양군 16개면에서 생산되는 무의 30%가 대평면에서 생산될 정도였다. 1965년 당시 진양군에서 생산되는 무의 총생산량은 약 1158만kg이었는데, 대평면에서 생산되는 양이 약 353만kg이었다. 이외에도 고구마․감자 등도 진양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부터 개통된 진주～하동 국도가 대평면 내촌리를 지나게 되고, 북쪽 명석면에서 대평리를 거쳐 남쪽 내촌리로 연결되는 길이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서쪽의 수곡면 주민들이 고이재를 넘어 내촌리로 오는 길도 새로 확장되어 내촌․당촌․하촌리 등은 상당히 번화한 지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마동장이 없어진 후 대평면에는 이렇다 할 시장이 없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대평리 종대거리에 시장이 형성된다. 대평마을 삼거리에 종대(鐘臺)가 세워졌다고 해서 종대거리라 불렀다. 1952년부터 1968년까지 최번성기에는 상품을 실은 많은 차량들이 종대거리를 찾았고, 시일(市日)이 되면 단성․수곡․옥종․명석면에서 온 사람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대평면은 진양군내에서 가장 부유한 면의 하나로 부각한다. 더불어 인구수도 급격하게 늘어난다. 1920년대말 호수가 916호였는데 반해 1964년에는 1,430호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증가와 함께 교육을 담당할 학교도 세워졌다. 일제강점기때 세워진 대평초등학교를 비롯해 내촌리에 마동초등학교, 대평리에 한평초등학교, 신풍리에 신풍초등학교가 해방직후에 세워졌다. 한평초등학교는 정동화가 대평리에서 사학(私學) 공민학교를 설립해 무료로 운영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평초등학교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정동화는 학교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1953년에는 내촌리에 진서중학교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