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江과 大坪人

대평면(大坪面)은 남부지방 고대문화(古代文化)의 발원지이다. 대평면 일대의 남강(南江)변에서 구석기문화와 신석기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고 이어 청동기시대, 삼한시대로 이어졌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선사유적(先史遺蹟)들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공한 생명의 젖줄인 남강(南江)과 그와 이웃해 삶터를 꾸렸던 대평인(大坪人). 진주문화사(晋州文化史)의 첫 페이지를 연 것은 바로 진주문화의 뿌리인 남강과 대평인이었다.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산청을 따라 흐르는 경호강은 단성면 원지리에서 동남쪽으로 흘러들어 남강이 된다. 대평면을 통과하고 덕천강과 만나 더 큰 물줄기가 된 남강은 진주시를 돌아 동북향으로 흘러 낙동강과 만나기 전까지 주변의 많은 지역에 좋은 생활터전을 제공했다.
이처럼 대평면은 남강이 제공하는 비옥한 토양을 가졌다. 물줄기가 곡류하면서 토사가 계속 쌓여 형성된 반원형 퇴적지는 농사짓기에 적합한 고운 입자의 사질토였다. 그리고 가뭄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젖줄 남강 때문에 대규모 농경지가 발달되었다. 이러한 농업 생산력의 뒷받침 아래 대평면은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질 수 있었다.
산(山)과 들(野)과 강(江)을 낀 천혜의 입지를 가지고 있는 대평면은 자체적으로도 풍부한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대규모 농경지가 발굴됨으로써 농업 생산의 선구자로서 갖는 측면도 중요성을 갖는다. 더불어 산간과 해안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각종 정보의 교환과 물자이동 등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처럼 대평면이 농업의 중심지이자 교역의 중심지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강과 경호강이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강(江)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많은 혜택을 준다. 그런 반면, 자연재해에 가장 많이 노출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시 대평사람들은 자연제방을 중심으로 취락을 형성했다.
조선총독부가 1925년에 측량한 지형도를 보면 당시 대평면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대평면의 충적평야는 거의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은 곳은 취락이나 숲이 입지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토지이용의 특성으로 지형면을 구분하면 대평충적평야에서 자연제방은 네 개의 열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가장 연속성이 좋은 자연제방에는 옥방동과 어은동의 가장 동쪽 마을이 선상으로 입지하며, 옥방동에서는 취락을 과수원이 취락을 에워싸고 있고 지형면의 폭이 상당히 넓다. 이 자연제방은 하천으로부터 두 번째 자연제방이다. 이 자연제방보다 산지쪽에 위치한 농경지나 취락을 홍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취락의 외곽을 경계로 해서 인공제방을 쌓기도 했다.
1925년에 제작된 지형도에서는 이 인공제방보다 하천쪽에 폭은 상당히 좁으나 침엽수와 활엽수로 된 숲이 남강의 하도와 평행으로 길게 자연제방에 분포하고 있었다. 이것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자연제방으로 1980년대에는 모두 밭으로 이용되었는데 대평 무를 비롯한 딸기, 수박 등 시설재배지로 이용되었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어은동 취락이 약 400m는 정도로 길게 입지하는 곳과 이보다 더 산지쪽에서 북～남방향으로 약 700m 가량 연결되는 제방들 중 산지쪽의 두 개는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지만 지형면의 선적 형태가 뚜렷하다. 산지와 자연제방 사이, 자연제방들 사이는 물론 그리고 옥방동과 구릉지 사이의 범람원도 상대적으로 해발고도가 낮다.
일제시대 지형도에 의하면 1925년의 자연제방에는 활엽수의 숲으로 둘러싸인 취락이 입지하였고, 지역에 따라서는 활엽수나 침엽수,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는 범람원이 입지하는 취락 주위에 숲을 조성해 홍수를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다. 그리고 배후저지는 모두 밭으로 이용되었다. 당시에는 배후저지에 관개수로를 만들만한 사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논을 조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밭의 면적에 비해 논의 면적은 매우 적었다. 이후 대평면에서는 관개수로를 만들어 밭을 논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많이 전개되었다. 대평리(大坪里)의 안사영보(洑), 지판일본인 양수장(揚水場), 대평양수장, 옥방마을 일본인양수장 등이 그것이다. 
1970년도에는 20세기 초에 비해 토지이용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즉, 취락과 경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취락지의 경계부를 연결하는 인공제방을 쌓은 것이다. 이에따라 밭으로 이용되던 배후지가 모두 논으로 바뀌었다. 대형 범람원의 가장 북쪽에서 남강으로부터 관개수로를 만들어 물을 공급한 뒤 밭을 논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에따라 옥방동의 숲은 모두 과수원과 밭으로 바뀌었으며 곳에 따라서 취락이 입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천변을 따라 있었던 숲들은 모두 밭으로 개간되었다. 이후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대평면의 토지이용은 1970년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단지 충적평야의 대부분에 비닐하우스가 들어 상업적인 작물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이처럼 대평사람들은 운명적으로 남강의 주요 지류인 경호강과 더불어 삶을 살아야만 했고, 지금까지 운명을 같이 해 왔다. 남강으로 인해 대규모 농경지를 가질 수 있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곡식을 길러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대평면은 주변지역과의 교역도 비교적 활발했다. 성인 1일 이동거리를 30km로 했을 때 하동군 옥종면을 비롯한 산간지역은 물론 남해안의 사천만까지도 교역이 이루어졌다.
그 교역의 흔적중의 하나로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패류를 들 수 있다. 패각을 이용하여 장신구도 만든 것이다. 이는 대평면이 교역의 중심지로 그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이용했고, 이러한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강이 수운(水運)을 통한 교통로로 이용되었음도 간과할 수 없다.
남강과 대평면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대평면은 역사적으로 그 존립형태를 남강 이전에 경호강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강과 낙동강의 주요지류인 경호강의 절대적인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남강과 대평면은 오랜 시간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고, 오늘날까지도 대평면은 그 영향력 아래 숨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평면은 긴 역사과정을 통해 진주지역 사회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왔다. 그러나 대평면은 남강댐이 들어서면서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 지역이든 역사의 변천과정에서 지역사회의 구조가 달라지고 성쇠(盛衰)가 맞물려 진행되는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대평면은 특이한 입지 때문에 다른 면(面)지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변화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다.
1969년 남강댐 완공은 진주문화사의 뿌리임을 자처했던 대평의 전부를 물 속에 묻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대평면의 선사시대(先史時代)가 유적발굴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유물(遺物)과 사진(寫眞), 도면(圖面)만 남긴 채 다시 자연속에 묻혔듯이 대평면의 많은 지역이 물 속에 잠기고 만 것이다. 게다가 1989년부터 시작된 남강댐 보강공사는 대평면의 거의 모든 지역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대평면민들의 부유한 삶을 일구어 주었던 남강이 오히려 삶터 자체를 모조리 빼앗아 버린 것이다.
남강댐 축조 이전까지만 해도 대평면은 진양군 16개 읍․면 가운데 가장 부유한 면(面) 중의 하나였다. 해방 이후, 대평 무가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진양군 16개면에서 생산되는 무의 30%가 대평면에서 생산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몰로 인해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 개통된 진주～하동국도가 대평면 내촌리를 지나게 되고, 명석면에서 대평리를 거쳐 남쪽 내촌리로 연결되는 길이 중요한 통로역할을 하면서 내촌리․당촌리․하촌리는 상당히 번화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이에따라 대평면은 진양군내에서 가장 부유한 면으로 부각되었고, 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20년대말 호수가 916호인데 반해 1964년에는 호수가 1,430호로 증가한데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번성했던 대평면은 1960년대 말부터 급격한 쇠퇴기를 맞는다. 1960년대부터 전개된 정부의 고도성장정책에 따라 공업화정책이 우선되고, 농촌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면민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와함께 대평면은 남강댐 축조로 많은 지역이 수장되면서 다른 면지역보다도 더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들게 된다.
대평면은 진양호로 인해 크게 대평리지역, 상촌․하촌․당촌․내촌리지역, 신풍리지역으로 삼분된다. 더군다나 지역간 교통이 매우 불편해 진주지역과의 교통이나 상호간의 내왕도 나룻배나 정기적인 도선을 이용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가 되고 만 것이다.
남강(南江)과 대평인(大坪人).
대평면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남강과 대평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남강의 역사가 곧 대평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대평면이 진주문화의 뿌리가 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 것이 남강이었지만 오늘날 대평면의 많은 부분을 기억속에 묻어 버리게 만든 것도 남강이다. 이것이 대평면의 역사를 이야기함에 앞서 남강과 대평인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