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끝내 지켜내지 못하고 떠난 자리 곳곳에 작은 생명들만이 가냘픈 몸짓으로 옛 기억을 더듬고 있는 대평면(大坪面). 한동안 주인이 떠나 폐가가 된 집들이 억지스럽게도 그 자리에 서 있더니, 어차피 고향을 송두리째 내주어야 할 운명임을 늦게서야 알아 차린 듯 마을은 한 조각씩 사라져 마침내 강물에 모든 걸 내어주었다.
어느 곳인들 사연이 담기지 않은 곳이 있을까? 이제는 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차츰 잊혀진 그리운 이름들만 머릿속을 맴도는 대평면.
대평(大坪)은 진양(晋陽) 땅의 깊은 산양(山陽)속에 자리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온 유서깊은 학향(學鄕)이다.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명예로운 지역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인심이 좋고 수려한 자연과 더불어 선현들이 많이 출생하여 충효와 예의를 숭상하고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켜 온 역사 향기 그윽한 고장이 바로 대평면이다.
대평면의 문화경관은 한마디로 농경사회의 가장 기초적이고 중심적인 공동생활공간에서 기능했다. 다시 말하면 문화경관을 통해 대평면의 자연마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화경관은 샤머니즘․불교․유교․기독교와 관련되며 다른 차원에서는 1970년대 촌락경관에 큰 미친 새마을사업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대평면에서 대표적인 샤머니즘과 관련된 경관은 수몰 전 신풍리의 벅수(박수)거리와 당산이 대표적이다. 불교적 경관으로는 사찰․암자가 지명으로만 남아 있는 사찰터(신풍의 절터․부채골․불당골․영법골)가 있으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암자는 대부분 해방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기독교 경관인 교회는 1956년 대평교회가 있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의 대평면에는 대부분의 촌락들이 수몰된 까닭에 경로당과 마을회관 이외에는 뚜렷하게 나타난 경관이 없다. 대평면의 경우 대부분의 촌락이 여러 성씨가 사는 곳이며 전형적 씨족촌락으로는 창원황씨의 신풍리과 순흥안씨의 하촌리를 들 수 있다.
수몰이전의 신풍마을에는 마을 앞 강가의 장승이 있는 벅수거리, 창원황씨의 입향조를 모신 사당과 재실, 열녀비․효자비, 정자, 마을 뒤의 당산, 산골의 암자, 그리고 마을의 향약인 동안(洞案) 등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씨족마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평면 전체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교적 문화경관은 씨족의 입향조 등 선조를 제사하는 사(祠)와 사의 기능을 하면서도 동시에 씨족의 회합장 및 서당 등 복합적 기능을 행하는 재(齋)가 대표적이다. 지역별 유교경관을 살펴보면 마동(내촌․당촌)은 청계서원(1840년에 설립되었으나 지금은 훼철되어 없어지고 지금은 터에 비가 세워져 있다. 반용재(盤龍齋), 퇴수정(退水亭), 족정(足亭)과 허백당은 옛날에 있었다고 하는 정자이나 오래전에 없어졌다.
침곡(상촌․중촌․하촌)지역은 효산재(孝山齋), 화양정사(華陽精舍), 도통사(道統祠), 송호재(松虎齋), 석강재(碩岡齋), 한천재(寒泉齋), 염수재(念修齋), 반숙정(盤淑亭) 등이 있었으나 일부는 1970년 수몰로 없어졌다.
대평리는 은산재(隱山齋), 경모재(敬慕齋), 추모재(追慕齋), 옥강재(玉岡齋), 고산정(孤山亭),  등이 있다. 신풍은 동산재(東山齋), 삼고대(三高臺), 용강정(龍崗亭), 퇴수정(退水亭), 칠수정(七水亭)이 있지만 동산재를 제외하고는 수몰로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설되었다.
이를 볼 때 대평면의 유교적 문화경관은 대평리의 고산정과 신풍리의 몇몇 정자를 제외하고는 조선시대 유학자 자신의 수기강학처(修己講學處)인 정(亭)․정사(精舍)류는 적은 편이다. 각 씨족의 재실들은 대부분 20세가 들어와서 특히 1940년대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마동 내촌리의 족정과 허백당, 마동석비, 청계서원 등 진양지에 수록된 오래된 유교적 지명과 경관이 비교적 많지만 대부분은 현존하지 않는다. 더불어 1940년 이후 대평면에 각 씨족의 재실이 새롭게 건립되거나 복구된 것이 많은 것은 이 시기에 무 등 특작물의 재배로 대평면이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문화적 경관이 유서 깊은 대평 땅은 남강댐 건설로 수 백년을 이어내려 오던 공동체가 붕괴된 것은 물론 토지수몰로 생산주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역산업의 생산성 감소는 물론 교통불편 등 치명적인 손실을 묵묵히 받아 들여야만 했다. 게다가 이러한 남강댐 건설로 인한 피해는 일시적이 아닌 30년이 넘게 지속되어 주변지역은 황폐화되었고 지역발전의 미래도 기약하기 어려운 지역낙후의 표상이 되었다.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야 통일이 되면 찾아가면 되지만 대평사람들은 영영 찾아가지 못하는 정든 고향을 가슴속에 묻었다. 그러기에 대평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향산천의 모습은 늘 그립고 서러운 향수에 젖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