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고향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다. 어릴 때 가장 순수했던 그 때 순정을 나누던,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그 때 사람들과 고향 마을속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고향이란 그런 힘을 지닌 곳이다.
고향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놀라운 힘이 된다. 동구 밖까지 나와 눈물 글썽이며 손을 흔들던 할머니와 너나없이 반갑게 맞이하는 고향사람들의 따스한 정. 꾸러미 꾸러미 보따리를 챙기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우리는 지친 도시의 삶을 털어 낸다. 그리움도 때로는 힘이 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고향이란 이름 앞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남강댐건설로 인한 수몰 후 대평사람들이 겪은 급격한 삶의 변화는 ‘우리에게 고향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고향을 잃어버리고 만 대평사람들의 삶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고향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댐건설(建設)과 수몰(水沒).
남강댐 건설은 홍수피해를 막아 주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식수공급 등 고질적인 물부족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의 이면에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수몰민들의 애환이 숨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대평사람들에게 이미 정해져 있었던 가혹한 운명인지도 모른다. 새롭게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의 차이에서 오는 삶의 변화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평사람들은 그러나 간절하게 고향을 희구하면서도 또 다시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록 많은 것을 내어 주었지만, 반쪽의 고향은 남아 있고 옛 기억이 그리 멀지도, 희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강제로 고향을 등 떼밀려 나오면서 다시는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 생활을 시작하리라 마음먹었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뒤돌아 보는 대평의 기억은 문득문득 가슴 시리게 만든다.

1. 남강댐 들어서다

사람들은 편의상 강가에 이주하여, 도시를 발달시켰다. 그러나 여기에는 항상 수몰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江)을 극복 또는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도시 지역을 통과하는 강의 모습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을 다스리는 과학 및 기술의 지배가 오랫동안 성공했다고 자찬했으며, 자연과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의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도시에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수 있는 것은 도시와 자연이 상호간에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러나 개발지상주의가 판을 치던 시기에는 댐건설 등 대규모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이같은 도시와 자연의 조화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특히 대평면에 있어서 남강댐 건설은 더욱 그러했다.
다목적 댐의 역할은 우리나라와 같이 계절에 따라 강우량이 많이 차이나는 나라에서 수량 조절뿐만 아니라 전력 생산, 용수 생산(공업용수, 생활 용수 농업 용수)의 기능 외에 고용 증대, 관광 리크리에이션 등의 기능까지도 한다.
그런 반면, 이런 기능을 이끌어 내는 댐에서 얻어내는 것도 많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적지 않다. 우선 그 지역은 댐으로 막혀 생긴 호수에 모두 수몰된다. 그리고 이 때 수몰되는 지역은 보통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1969년에 건설된 남강댐은 ‘다목적댐(南江多目的Dam)'이다. 다목적댐이란 수력발전을 비롯해 농업용수 공급, 홍수방지, 관광 등 여러 가지 용도를 목적으로 만든 댐이다. 그 중에서도 홍수조절과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남강댐에는 ‘진양호'가 생겨났다.
남강 유역의 북부인 경남의 서북부지역은 지리산의 천왕봉 등 높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장벽을 이루고 있어 산지성 강우와 게릴라성 폭우에다 태풍이나 집중호우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남강 연안과 낙동강 하류는 늘 홍수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때부터 남강 치수문제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조선말 대한제국 정부에서도 이미 남강치수 문제에 관심을 갖고 1908년 기사를 현지에 파견해 ‘남강 굴할(堀割)공사' 등을 계획한 적도 있었으나 국권상실로 무산되었다.
그후 남강댐은 일제가 1920년도에 세운 낙동강 종합개수계획의 일환으로 검토되었다. 남강댐건설은 1920년부터 1925년까지 낙동강개수계획 수립시 건설지점이 선정되었다. 이어 1926년부터 실시된 낙동강 개수공사가 1936년에 완료되었고, 착공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병자년 대홍수를 계기로 1936년 착공되었다.
남강댐은 1936년으로 낙동강 홍수피해 복구와 동시에 사천만 방수로 굴착공사 착공을 시작으로 1차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업이 중단되고 만다. 당시 일제는 남강댐공사의 공사장비와 재원을 전쟁물자로 동원하면서 공사는 200만㎥ 굴착에 그쳤다.
그러다가 정부수립 후인 1949년 남강댐공사 2차 착공이 시작되었다. 공사는 일제강점기때 적산 토목업체인 죽본조의 후신인 조흥토건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ECA사업으로 언제기초 CON'C심벽 200m를 시공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남강댐 건설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남강댐공사는 댐은 커녕 방수로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남강유역은 범람해 크고 작은 홍수에 시달리는 등 피해는 계속됐다. 특히 1959년 9월 전국을 강타한 태풍 사라호의 엄습은 진주사람들에게 아직도 공포로 기억되는 기록적인 태풍이었다.
그러던 중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정권은 남강댐건설의 중요성을 감안해 1961년 제1차경제개발계획에 포함시킴으로써 1962년 4월 26일 3차공사에 착공했다. 당시 국토건설청은 1966년까지 남강댐을 준공할 계획이었으나, 3년여의 공기연장 끝에 드디어 1969년 10월 7일 남강댐은 준공을 하게 된다.
이후 남강댐은 1970년 12월 28일부터 건설부 영남국토건설국 남강댐관리공사 사무소에서 관리를 시작했고, 1976년 3월 13일에는 산업기지개발공사에서 관리위임 받아 남강댐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를 했다.
무려 62억여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총공사비로 쏟아 부은 진주 최대의 공사답게 남강댐의 완공은 진주지역과 서부경남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우선 이 댐의 완성으로 댐 상류지역 2천2백85㎢에 대한 홍수량 모두를 남강으로 흘려 보내지 않고 방수로를 통해 사천만의 바다로 방류함으로써 진주지역과 남강 연안일대의 홍수범람을 없앴다. 그리고 낙동강 본류와 합류되는 하류지역의 최대 홍수량을 10% 내외까지 감소시키게 된 것이다.
게다가 홍수가 조절됨으로써 남강의 연안농지에 농업 관개용수를 공급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2천3백㏊의 새로운 개간지가 생겨나 연간 8만석의 미곡증산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댐 수문에서 강 수면까지 낙차 40m를 이용한 전기발전을 가능케 해 남강댐 발전소가 전기발전을 할 수 있는 최대 시설용량은 1만2천6백㎾가 됐고, 이에 따른 연간 발전량은 4만3천㎽/h가 됐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의 남강댐이 다목적댐으로서의 기능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판단하고 다시금 보강댐공사를 시작하기로 한다.
이후 1987년 11월부터 1988년 10월까지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가 추진되었다. 그리고 1988년 12월부터는 본댐과 발전소에 대한 실시설계에 들어가 1989년 11월 실시설계를 완료했다. 1989년 9월 16일 건설부 공고 제121호로 남강댐 숭상공사 기본계획이 공고되었다.
이어 1989년 9월 21일에는 해발 46.4m이하의 토지는 모두 하천예정지로 고시를 했고, 1989년 11월 30일에는 본댐과 여수로에 대한 본격적인 공사가 실시되었다. 이듬해인 1990년 6월 14일에는 실시계획이 고시되면서 본격적인 숭상공사가 실시되었다.
1992년 6월 11일에는 제수문공사가 착공되었고, 같은 해 11월 11일에는 발전소공사가 착공, 1995년 11월 20일에는 사천만방수로 보강공사가 착공되었다. 1992년 착공되었던 발전소 공사가 착공 4년만인 1996년 11월 7일 준공되었다. 그리고 1995년에 착공되었던 사천만방수로 보강공사도 1997년 1월 3일 준공을 보게된다.
이어 1998년 8월 8일에는 본댐수문설비가 준공되면서 1998년 10월 2일에는 드디어 상업발전이 개시되었고, 1998년 12월 15일에는 제수문공사 준공, 1999년 12월 20일 본댐공사가 준공되면서 2003년 12월 30일 남강다목적댐보강사업이 완료되었다.
사업기간은 1987년 10월부터 2003년 12월 30일까지 공사기간만 해도 16년이 걸린 대규모 공사였고 공사비는 무려 8,881억6,100만원이 투입되었다.
남강댐의 현황을 살펴보면 유역면적은 2,285㎢, 총저수용량은 309.2 106㎥이다. 댐의 형식은 콘크리트 표면차수벽형 석괴댐이며 높이는 34.0m(정상표고EL.50.0m), 길이는 1,126m, 체적은 1,280,000㎥, 댐 폭은 정상 7.5m이다.
남강댐 숭상공사가 가져온 성과의 이면에는 남강댐 공사로 인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수몰민의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파괴한 장본인이이기도 했다.
실제로 남강댐이 건설되면서 강에 살던 은어․뱀장어․연어 등의 모천 회귀성 고기들이 댐에 가로 막혀 올라가지도 못하게 됐고, 그 바람에 대평지역 등 남강 상류에서는 이들 고기들을 구경하기조차 힘들게 됐다. 또한 이에 따른 생태계 변화도 심하게 일어났다.
남강댐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공유한 양면성을 갖고 진주의 명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때문에 1969년에 이어 남강댐 숭상공사로 인한 2차 수몰로 소수의 이주단지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대평사람들 대부분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나가 살아야만 했다.

2. 고향을 떠나다

남강댐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급물살을 탄 도시화․산업화는 남강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결국 구 남강댐은 준공된지 불과 30여년 만에 제 기능을 잃고 새롭게 만들어진 댐에게 자리를 내놓고 1998년 7월16일 폭파․해체되면서 추억속으로 사라졌다.
남강댐의 등장은 대평면의 전부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1969년 남강댐으로 인한 수몰이전의 대평면의 인구현황을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1969년도 진양군의 통계연보를 보면 인구는 8,152명이며 농가수도 1,356호에 달했다. 그러나 1969년 남강댐이 준공된 이후 대평면의 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1970년 통계연보상의 대평면의 인구는 1969년 10월 1일 기준으로 6,636명에 농가수도 1,084호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1971년 통계연보상에 나타난 대평면의 인구는 1970년 10월 1일 기준, 인구는 5,504명에 농가수도 1,003호로 나타났다. 불과 2년만에 인구수는 32%인 2,648명이 줄었고, 가구수도 353호가 감소한 것이다.
남강댐 건설로 인해 하루아침에 대대로 물려오던 문전옥답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대평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삶터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당시 진양군내에서 특산물로 이름을 떨쳤던 대평 무와 고구마, 참외, 수박, 토란 등은 대평리 어은․옥방마을과 상촌리 상촌마을에서 명맥을 간신히 유지했다. 그러나 하촌리와 당촌리, 내촌리, 신풍리 등지에서는 극소량만이 생산되었을뿐 댐 수몰이전의 넉넉했던 그런 풍경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는 대평리의 어은․대평․옥방마을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옥한 농토의 70%인 약 750정보가 폐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토지의 일부라도 보상을 받은 주민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도시로 이주를 했지만, 끝내 고향 대평면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산골짜기의 박토를 일구며 근근히 삶을 유지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남강댐 건설 이후 대평사람들은 삶의 근간이 되어온 토지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실핏줄 같은 도로들이 모두 물에 수몰돼 버린 것이다. 상촌리에서 내촌리를 경유해 진주로 통하던 간선도로가 수몰되어 차량통행은 물론 사람들이 다닐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황대영 군수의 특별한 배려로 대평면 간선도로가 개통되어 1일 3회 정도의 시내버스 운행으로 약간의 교통불편을 덜 수가 있었다.
남강댐 건설로 인한 모든 불편은 대평사람들의 몫이었으나,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이 때부터 대평사람들의 고단한 생존투쟁이 시작되었다.
1966년 3월 30일 대평사람들은 「대평 무」주산지인 진양군 대평면 대평리가 남강댐공사로 인한 수몰예정지로 알려지자 방수제 구축이 절실하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남강댐 건설로 인해 돌아올 피해를 대비한 대평사람들의 요구였다.
당시 대평리는 300여정에서 생산되는 백미 3,700여석, 정맥 5,000여석과 30정의 과수원에서 발생하는 500백만원과 소채류소득 3,200만원, 기타 100만원 등 총 6,500만원을 생산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또 방수제가 구축될 경우 경지에서만 연간 5,000만원의 생산고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방수제 구축에 댐공사 총예산의 10분의 1인 3억원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6년 이내에 그 정도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몰지구민들은 자체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는 정임영(鄭任永), 부위원장에 정성화, 정봉영을 비롯해 위원 10명을 위촉했다.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방수제 공사는 착수되었으나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방연장과 제방내부의 저위지대보상, 도로개설, 양수장의 이전, 싯가에 의한 일시 보상 등이었다.
가옥을 철거당하고 새로운 생활에로의 전환점을 찾아야 하는 대평사람들로서는 조선시대이후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등져야 하는 설움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실정이었고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옥토를 버리게 되는 상황이라 당국의 정당한 보상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었다.
대평면의 교육도 수몰로 인한 대평면의 운명과 같이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진서중학교가 수몰지구에 편입됨에 따라 타지로 이전해야할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인근의 수곡면과 명석면에서는 유치위원회까지 만들어 진서중학교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대평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가진 것 모두를 물에 내다 버려할 상황에서 진서중학교를 대평면에 그대로 둘 수 있도록 앞장서 나설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평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이었던 것은 수몰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문제였다.
이후 대평사람들의 수몰보상 요구는 더욱 격렬해진다.
1968년 3월에는 대평면을 비롯한 수몰지구 2만여명의 주민들은 ‘고향을 버리는 수몰지구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낼 것을 결의함과 동시에 ‘잔여보상 지불완료까지 댐공사건설 불가’와 ‘보상금 전액 현금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군유지를 경작했던 주민들까지 소작권에 의한 이농비 지급을 요구했고, 군청으로 달려가 농성을 벌였다.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1967년도에 대평 방수제공사가 준공됨에 따라 농토 20만평과 가옥 20여호가 완전 폐용되어 안식처와 명줄이 끊어진 주민들이 농토와 가옥의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대평사람들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지만 진양군의 살림살이를 맡은 진양군은 이주대책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수몰민들의 원성을 샀다.
1968년 대평리 3개마을을 제외한 상촌리와 하촌리, 당촌리, 내촌리, 신풍리 등 5개리 12개마을은 해발 37.5m까지 지급된 보상금을 수령한 뒤 새 삶터를 찾아 정든 고향을 뒤로한 채 떠나기 시작했다.

3. 또다시 찾아 온 절망

수몰로 인한 보상금을 수령한 뒤 많은 대평사람들이 고향 대평면을 떠났다. 그러나 보상금을 수령하지 못하거나 끝내 거부한 일부 주민들은 고향 대평면에 남아 새로운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문전옥답을 잃어버린 대평사람들은 골짜기로 찾아 들었다. 수몰한계선을 벗어난 지대에 또다시 땅을 일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대평사람들은 결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절망이 대평면을 엄습해 왔다.
정부에서 기존의 남강댐이 홍수조절 등 제 기능을 잃었다고 판단, 남강댐 보강공사를 실시하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남강댐 보강공사가 완료되면 대평면 대부분의 비옥한 토지는 전부 물 속에 잠기게 되고 사실상 면(面)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될 것은 자명했다.
정부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1989년 9월 16일 건설부 공고 제121호로 해발 46.4m 이하의 토지는 하천예정부지로 공고를 하고 남강댐 숭상공사에 착수했다.
그나마 계획되었던 보상금지급도 정부예산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당초 1990년과 1991년에 보상금이 지급키로 계획되었으나 예산확보가 제때 되지 않아 1992년 예산책정 또는 추경예산 확보후 보상금이 지급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대평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된다.
댐건설 후 도로가 수몰되면서 1천 여 명의 주민들이 고립되는가 하면, 교통의 불편으로 수십km를 돌아서 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대평사람들이었다. 또한 농산물을 생산해도 내다 팔 길이 없어지면서 대평면의 경제는 파탄의 위기까지 내몰렸다. 한때 진양군내에서 가장 부면(富面)이었던 대평면이 쇠락의 길을 걸어 이제 가장 빈촌으로 전락했는데도 정부의 대처는 실로 안이하기 까지 했기 때문이다.
또 면사무소에 행정전화가 설치되지 않아 주민들은 수십km를 다니며 민원을 해결해야 했고, 장티프스 등 각종 질병이 집단으로 발병되는 등 생활환경도 최악의 상태를 면치 못했다. 농산물은 각종 병해충에 견디지 못했고 대평사람들의 삶도 함께 시름시름 병들어 갔다.
그런 와중에 1975년 대평면 어은마을과 옥방마을 일원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어 대평면은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평리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은 대평사람들이 경남문화의 발원지였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당시 대평면은 그 모든 소중한 유적과 함께 또 한 번 수장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1989년 대평면을 비롯한 수몰예정지구내 주민들이 남강댐 숭상공사를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건설부의 진양호댐 숭상계획과 관련해 진양군 대평면 대평리 등 10개마을 500여 주민들은 1989년 5월 26일 면내 대평리 시장터에 집결 50여대의 경운기에 탑승 오미리까지 진출 남강댐숭상 반대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경남지역의 사회간접 자본의 희생양이 된 대평사람들은 정부의 남강댐숭상공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1969년에 이어 또다시 찾아 온 절망을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남강댐 보강공사가 완료되면 대평면의 경우 면지역 90%가 물에 잠기게 돼 아예 면 자체의 존립여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수몰지구 사람들은 대체농지 조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평사람들은 수향회(회장 박형갑), 생존대책위원회(회장 정보영)를 조직해 남강댐 보강계획에 대하여 일단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한편 한국수자원공사, 건설부 등에 수차례의 진정서를 냈다. 주민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주민들이 농토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경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부의 답변이었다.
1989년 8월 7일 건설부로부터 ‘수몰민들의 현지 정착을 위한 농경지조성과 보상 등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회신을 받고 대평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체농지조성 요구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이행되지 않았고 대평사람들의 고난한 투쟁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1990년에 들어와서 남강댐 숭상과 관련 진양군 대평면, 명석면, 내동면, 수곡면 등 4개면내 17개마을 1,445가구 주민들의 이주단지 마련이 계획되었다. 1996년 대평지구 이주단지가 완성되면서 대평사람들은 다시 주어진 환경속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1999년 12월 20일 본댐공사가 준공되면서 대평면의 대부분 지역은 물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강댐 숭상공사가 완료되면서 1920대부터 시작되었던 남강치수사업은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
1970년초만 하더라도 인구는 5,504명에 농가수도 1,003호로 그나마 면(面)단위의 면세를 보이던 대평면은 그 이후로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그에따라 대평면의 면세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1975년 진양군의 통계연보상에 나타난 대평면의 인구는 4,274명이었고 가구수는 760세대였다. 불과 4년전인 1971년과 비교해보면 인구는 1,230명이 줄었고 가구수는 무려 243가구나 감소한 것이다.
대평사람들이 그렇게 고향을 떠나고 있었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서도 대평면의 인구는 감소추세를 이어갔다. 1980년 진양군의 통계연보상의 인구는 3,081명이며 가구수는 685세대였다. 1985년도에는 인구수는 3,080명이며 가구수는 646세대로 적은 폭이지만 줄어들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1990년도의 대평면의 인구는 2,448명으로 5년전에 비해 무려 632명이 줄었고 가구수도 592세대로 54세대가 줄어들었다.
1995년에는 진주시와 통합되면서 통합진주시로 새로 태어났지만 여전히 인구수는 줄어들었다. 1995년 대평면의 인구는 2,361명이며 가구수는 651세대로 59세대가 늘어났다. 하지만 남강댐숭상공사가 완료되면서 대평면의 인구는 급감한다.
2000년 진주시 통계연보 상 대평면의 인구는 1,645명으로 1995년의 2,361명에 비해 716명이 줄어들었고, 가구수도 542세대로 109세대가 줄어들었다. 이같은 대평면의 인구감소추세는 겉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2003년도 통계연보상의 대평면의 인구는 1,385명이며 가구수는 489세대로 감소되었다.
그동안 대평면에는 대평리에 이주단지가 조성되고 면사무소를 비롯한 각종 공공기관이 들어서면서 2004년 현재 대평면의 인구는 1,410명, 가구수는 517세대로 다소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50여년전인 1964년 대평면의 인구와 비교해보면 남강댐 건설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대평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직접 알 수 있다.
1965년 대평면의 인구는 무려 8,788명이었다. 그러나 2004년 현재 대평면의 인구는 1,410명에 불과하다. 무려 7,378며의 인구가 줄어든 수치이다. 이같은 수치는 현재 진주시의 16개읍면 가운데 문산읍(8,611명), 금산면(12,854명)을 제외한 나머지 면의 인구가 대략 2,528명(미천면)～5,996명(집현면)인 점을 감안한다면 최소 두 개 혹은 세개 이상의 면(面)을 물 속에 수장시킨 결과이다.
도시의 성장은 인구의 증가와 맞물려 온다는 타도시의 경험과 비교해 본다면 대평면은 지난 50년동안 줄곧 퇴락과 쇠퇴의 길만을 걸어 온 셈이 된다. 그만큼 남강댐 건설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순박한 농촌이었던 대평면을 두 번의 절망속으로 빠뜨렸다.
그러나 대평사람들은 지난날의 그 수많은 고난과 난관을 헤치고 지금 다시 일어서고 있다.

4. 제2의 출발, 다시 일어서다

수몰민의 애환을 가슴 한 켠 깊숙이 묻고 살았던 대평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대평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속에는 부촌(富村)이었던 대평면의 옛 영광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
먼저 남강댐 숭상으로 면 소재지가 새로운 준도시 지역으로 조성되면서 대평면은 진주시에서도 주목받는 면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면소재지인 대평리에 한평초등학교, 진양호지구대 대평파출소, 대평우체국, 북부농협 대평지소, 보건지소, 대평면대 등 각종 공공기관이 들어서면서 대평면의 중심지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대평면은 남강댐 수몰로 생긴 진양호를 중심으로 한 각종 관광자원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관광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지방도와 순환도로가 개통,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갖추면서 만들어진 일주도로를 따라 조성된 소공원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추게 된 것이다.
게다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대량으로 발굴된 대평리 지역에 선사시대유물전시관 건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선사시대 유물전시관이 건립되면 대평면은 진주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외에도 자연생태박물관 조성과 남강하도매립지 108ha에 조성될 딸기특화단지는 대평 무로 번영기를 누렸던 대평면의 새로운 경제의 근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대평면은 전형적인 농촌도시에서 벗어나 관광도시로의 발전을 위해 전 면민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평면을 찾아가도 옛 대평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옥토와 가옥들이 모두 물속에 있기 때문이다.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은 언젠가는 다시 고향을 찾아가면 조금은 달라졌지만 옛날의 그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대평면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간다고 해서 옛 대평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은 대평리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망향정 만이 옛 대평의 기억을 가슴에 담은 채 묵묵히 멀리 대평 들을 바라보며 서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