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촌나루터

예로부터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길이 생겨났듯이 강이 있는 곳에는 나루터가 생겨나 뱃길을 열었다. 물이 아름다웠던 고장 대평면에도 이처럼 나루터가 있었다.
대평의 대표적인 나루터로는 상촌리(上村里)의 상촌나루터와 대평리 밤밭나루배, 어은 북서쪽에 있는 한강나들이, 당촌리 사평의 벗들나루터, 내촌리의 마동나루터가 있었다.
대평면이 망각의 물결속에 모든 것을 내어 주기 전만 해도 상촌리에는 진주 최후의 나루터인 ‘상촌(上村)나루터’가 있었다. 대평면을 가로지르는 남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상촌리와 대평리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상촌(上村)나루터’.
남강에 나룻배가 최초로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남강변에 생겼다가 사라진 수많은 나루터 중 진주에 마지막까지 존속한 진주 최후의 나루터였던 상촌나루터는 1998년 7월 16일 새로 만들어진 연장 376m의 대평교(大坪橋)의 등장과 함께 사실상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상촌나루터는 한때 서울의 마포나루에 버금가는 교통요지였다. 때문에 상인들의 거점지가 되어 거상까지 만들어 낸 사업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상촌리는 나루터 덕분으로 대평면의 대표적인 농산물이었던 대평 무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의 집산지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촌나루터는 대평 어은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한강나루터와 같이 벼와 무를 교환하려는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당시에는 인근의 수곡면의 벼와 사천 삼천포의 해산물이 이곳에서 대평 무와 물물교환되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하루 1,600여명이 넘은 상인과 농민들이 상촌나룻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나루터 인근에는 늘 상인들로 붐볐고, 더불어 주막도 3개나 생겨나 피곤한 심신을 달래는 휴식터가 되었다.
상촌나루터의 배삯은 벼나 무 등 농산물이 주종을 이뤘다. 한 가구당 배삯을 어림짐작해 보면 나락 한 섬 정도였다. 물론 낯선 사람들에겐 돈을 받았다. 일 년 내내 배를 타고 내는 배 삯을 나락 따위의 곡식으로 셈하지만 사공은 나룻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자기 가족 대하듯 정(情)으로 맞이했다.
강건너에서 ‘사공’하고 외치면 손을 휘 내젖고는 곧장 달려오는 나룻배는 단 몇 초도 기다려 주지 않는 각박한 요즘사회와는 다르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에만 집에 가면 된다는 옛사람들의 정서도 찾아 보기 힘들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감자며 고구마를 쪄서 사공에게 건네고 ‘백양’담배 한 갑이면 적어도 이틀 정도는 무료로 태워 주었던 순박한 인심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상촌 나루터였다.
이렇듯 상촌나루터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도시화․현대화의 바람에 밀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상촌나루터는 1969년 남강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대평지역의 비옥한 토지가 사라지면서 토박이들이 타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점점 그 명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노를 젓는 목선에서 강 양안을 연결한 쇠줄로 이동하는 현대적 나룻배인 철선으로 바뀌었지만 이용자는 날로 줄어 들었다.
하루 평균 1,600여명이 이용하며 성시를 이뤘던 상촌나루터에는 고작 30여명의 주민들이 나룻배를 이용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단순히 강을 건너는 교통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운영이 어렵게 되자 행정기관에서 운영비를 지원했지만 그마저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넉넉지가 않았다.
노를 젓던 사공은 먹고 살기 위해 정든 나루터와 나룻배를 떠났다. 삶의 애환이 묻어 있던 나룻배는 이리저리 뒹굴다가 도로가에 나뒹굴며 옛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추억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평면 상․하부지역을 연결하고 명석면과 산청군 단성면, 수곡면 원당, 귀곡동, 사천시 완사를 순환하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가 세워져 있다.
상촌나루터가 언제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촌나루터는 지난 1997년까지만 해도 상촌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자동차 등 기계문명의 발달로 도처에 교량이 건설되면서 나루터와 사공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노를 젓는 노사공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근․현대화라는 세월속에 댐이 건설되고 초가집이 없어지고 마을길이 넓어지고 강을 가로지른 다리까지 세워짐으로써 그야말로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밀려 노를 젓던 그 사공도, 그 나룻배도 나루터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상촌나루터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옛 시절의 상징물이긴 하지만 서민들의 생활상을 가장 숨김없이 증언해 주고 그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 저편에 수장돼 버린 상촌나루터를 떠올리면 실향한다는 것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허허로움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상촌나루터가 걸어 온 번성과 퇴락의 길을 보노라면 대평면이 걸어 온 길과 다르지 않다. 그래선지 대평사람들에게 있어서 상촌나루터는 실향의 그 어떤 절실한 그리움 혹은 대상이다.
상촌나루터에 묻혀져 있던 대평사람들의 삶의 애환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의 추억을 안고 대평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살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