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리 유적 발굴 당시 고고학계와 언론이 진주 남강 대평리 유적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 이는 대평유적의 규모가 크기가 110만평에 이르는 대규모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평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 청동기시대 대평(大坪)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대평유적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성립되기 이전이며 철기를 사용하기 전인 구리를 사용하던 시기의 유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당시 스물 두 팀의 발굴조사단이 3년째 발굴을 실시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발굴조사 결과 대평 유적에서는 마을과 무덤 등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할 수 있는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에 한국방송(KBS)은 지난 1999년 7월 「KBS 역사스페셜」에서 ‘2500년전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다’는 제하의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대평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2500년 전부터 치열한 식량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단순히 땅을 넓히기 위한 전투가 아닌 식량전쟁이었던 2500년전의 전투.
전쟁 자체는 비극이었지만, 이 시기의 전쟁은 대평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에 삼한이 들어서고 나아가 삼국시대로 발전해 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진주 남강 대평리에서 발견된 마을과 무덤은 2500년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단수(斷首)인골의 발견
남강댐 수몰예정지역인 남강 상류지역에 댐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파내려 가자, 이곳에서 2500년전의 유적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110만평에 이르는 유적지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무덤이 하나 발견됐다. 이 무덤은 대평면 옥방지구d에서 발굴된 석관묘로 무덤 위에 덮개돌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 석관묘안에는 2500년의 세월을 견뎌온 인골이 남아 있었다. 당시의 인골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그런데 인골에는 유독 머리부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머리없이 매장된 인골은 고고학 발굴상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국내에서도 머리없는 인골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왜 유독 머리가 없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인골은 당시 발굴을 담당했던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석관묘에서 발굴된 인골의 자세한 상태를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인골의 상태는 불량하지만 이 인골은 두개골이 없는 특이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대퇴골의 일부에 목뼈가 걸려 있고, 목뼈 다음에 두개골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두개골을 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이에따라 이 석관묘에는 처음부터 사람의 두개골이 이미 없어진 상태로 매장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인골은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부위가 명확했다. 이 인골의 매장상태는 오른쪽 팔이 굽혀져 배 위에 놓인 상태이며 왼쪽 팔과 다리 부분은 있지만 두개골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 인골에서는 치아가 발견되지 않아 두개골이 없는 상태로 매장된 것이 분명했다.
우리나라는 토양성분이 산성이어서 천 년이 넘는 인골이 온존히 보존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인골이 흙이 됐다해도 치아가 남는 일은 종종 있다. 치아는 사람 몸에서 가장 늦게 부식하기 때문이다.
경남문화재 연구원 정의도 학예실장은 다른 석관묘에서는 치아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부스러기편과 더불어 더 큰 치아도 발견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 석관묘의 인골에서는 치아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무덤의 크기도 머리부분의 여유공간이 없었다. 이 인골은 매장 당시부터 머리가 없이 묻힌 것이 분명했다.
2500여년전 이 땅에 살았던 머리없는 무덤의 주인. 무덤의 주인은 왜 죽었으며, 어떤 이유로 머리가 없이 몸만 묻힌 것일까.

○화살촉의 발견
머리없는 인골이 발견된 옥방지구 석관묘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서 또다른 석관묘가 발굴되었다. 이 무덤에서는 인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인골은 흙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무덤속에 있는 흙을 떠내 물채취를 한 결과 손톱만한 돌멩이가 발견되었다. 이 무덤에서 나온 것은 모두 4개였고, 돌멩이 4개는 면을 잘다듬어져 있었다.
국립문화재 연구소 이주헌 연구사는 이 돌의 제일 앞부분에 있는 선단부만 있는 걸로 봐서 세장한 화살촉인 것으로 확인했다. 즉, 무덤안에서 나온 이 네 개의 돌멩이는 화살촉의 끝부분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부장품을 넣어 장례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살촉 끝부분만을 부장한 경우는 아직 고고학계에서 보고된 바가 없다. 이주헌 연구사는 일반적으로 석관묘에 부장되는 화살촉은 거의 완형이고, 이번 경우와 같이 화살촉의 끝부분만 정확하게 1센티미터 내외의 크기를 가진 것은 부장된 유물이 아닌 어떤 특별한 이유를 가진 유물인 것으로 내다봤다.
부장품이 아니라면, 왜 화살촉의 끝부분이 무덤안에 남겨진 이유는 무엇인가. 돌멩이를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화살촉의 끝부분은 나머지 몸통 부분과 강한 충격에 의해 절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상대학교 지질학과 김영호교수는 화살촉에 대해 응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단면을 봤을 때 부식이나 마모에 의해서 했던게 아니라 파괴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했다. 무덤안에서 발견된 화살촉의 끝부분은 부러진 것이다. 부러진 화살촉 4개. 화살촉의 나머지 몸통부분은 무덤안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부러진 화살촉의 발견된 위치도 가지런히 정돈되었을 부장품과 달리 무덤안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이주헌 연구사는 일반적으로 부장품으로 생각되는 석촉들의 매장은 석관내에서 피장자의 머리부위나 발치쪽에 놓여진 경우가 일반적이며, 이것처럼 석촉의 선단부만이 출토되는 예는 국내에서도 굉장히 드문 예이고 어떤 형태를 갖춘 부장된 유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즉, 관속에서 발견된 부러진 화살촉은 무덤주인이 화살을 몸에 맞고 죽었다는 사인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여기저기서 발견된 네 개의 화살촉은 무덤의 주인 몸에 꽂힌 화살촉이었다. 따라서 2500여년동안 남아 있던 부러진 화살촉 네 개는 무덤주인이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이주헌 연구사에 의하면 부러진 화살촉은 피장자의 사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며, 결국 화살을 맞고 이미 피장자가 죽은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화살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어떤 시대적인 상황이 당시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호(環壕)와 목책(木柵)
대평 옥방지구에서 발견된 석관묘의 주인은 날카로운 돌촉이 달린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온 몸에 화살을 네 대나 맞은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묻힌 무덤이 하나가 아니었다. 발굴이 진행되면서 무기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무덤이 계속 발견된 것이다. 현장발굴에 참가했던 전문가들조차도 유례가 없는 이 발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500여년전 진주 남강의 대평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 의문의 열쇠는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마을 유적에서 발견했다.
당시 이곳은 드넓은 평지였다. 현재 발굴된 집자리만 해도 90여채에 이르고 발굴이 진행되면서 집자리에서는 전형적인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붉은 토기도 그 중 하나이다. 이것은 2500여년전 청동기인들이 이 땅에 살았음을 말해주는 유물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마을에서 발견된 폭이 약 2m인 긴 도랑이다. 도랑 주변의 흙은 검게 부식이 되어있었다. 인간이 땅을 파고 굴착한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어떤 시설물을 만든 흔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도랑은 2500여년전 사람들이 만든 하나의 구조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청동기인들은 왜 땅을 파서 도랑을 만든 것인가. 도랑을 살펴보면 도랑안의 깊이는 2m로 위는 넓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 특히 도랑안은 발이 간신히 들어갈만큼 좁다랗게 홈을 파놓았다. 만약 발이 낀다면 빠져 나가기 힘들 정도의 좁은 홈인 것이다. 따라서 물이 흐르도록 만들기 위한 도랑은 아니며, 외부에서 적이 침입해 들어와서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V자형으로 굉장히 깊게 판 도랑이었다.
경남고고학연구소 박광렬조사과장은 이같은 도랑에 대해 청동기시대에 방어를 위해서 인공적으로 판 환호유적이며, 외부의 적들이 쳐들어 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깊이 판 방어시설물로 결론 내렸다.
환호(環壕)는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마을사람들이 둥그렇게 판 도랑이다. 그러나 방어시설은 환호만이 아니었다. 환호를 따라 커다란 구멍들이 발견된 것이다. 지름 30cm 정도의 구멍은 약 2m의 규칙적인 간격으로 환호를 따라 이어져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방어흔적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 구멍은 환호내부에 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이중방어하는 목책(木柵)시설인 것이다. 구멍은 굵은 통나무를 세웠던 흔적이다. 통나무 사이에 나무나 판자를 대고 나무 울타리를 친 것이다. 즉 기둥과 기둥 사이에 책(柵)을 만든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도랑을 파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다시 나무 울타리를 세운 이중의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남강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성을 쌓은 것이다.
환호가 1차 방어시설이 되면 목책은 환호를 뛰어 넘은 적을 방어할 수 있는 2차 방어시설인 셈이다. 이 두 개가 한꺼번에 세워짐으로써 강력한 방어체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이 유적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추측하면 남강사람들은 적이 마을안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깊이 150cm의 도랑을 파고, 환호를 따라 나무 담장인 목책을 세웠던 것이다.
여기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같은 환호와 목책을 세우는 일은 당시로서는 대규모 토목공사였다는 점이다. 마을 전체를 2～3m의 깊이로 판다는 사실은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돌도끼로 나무를 벌목해서 다듬어 마을 가장자리를 둘러야 하고 거기에 판자를 만들어 두르는 작업은 대단한 노동력이 필요한 대규모 토목공사인 것이다. 마을사람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힘든 공사였지만 환호와 목책은 서로 다른 기능이 있었다. 환호가 마을로 건너오는 사람을 막기 위한 시설이라면 목책은 공중으로 날아오는 돌이나 화살을 막는 방패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을을 발굴하는 도중에 또다른 환호가 마을 한가운데서 발견됐다. 이번에는 약 3미터 간격으로 도랑을 두 개나 판 두줄 환호였다. 두 개의 시설을 함으로써 보다 큰 방어효과를 노린 것이다.
마을외곽의 환호와 목책, 그리고 마을 중심에 있는 또다른 두줄 환호와 목책, 이처럼 남강마을 사람들은 겹겹이 철통같은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김길식 연구사는 환호로 둘러싸인 마을은 일차적으로는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구분하는 일차적인 측면이 있고, 나아가서는 공동체적 유대관계가 더 발전 심화되는 과정에서 다른 집단간의 갈등이나 이를 해소시키면서 자기 공동체를 보호해 나갈 수 있는 환호와 목책이 있는 다른 마을이 생겨났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따라서 2500년전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환호와 목책같은 방어시설은 항상 적과 대치하는 전쟁이 자주 일어났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고 있다.

○지역공동체로의 전환
남강가 대평사람들은 환호를 파고, 목책을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을의 심장부에 다시 두 줄 환호를 팠다. 그들 나름대로는 이중삼중의 철통같은 방어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 마을의 상황이 계속해서 방어를 하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 넓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영토싸움인가. 그러나 애써 담장을 높이 쌓고, 울타리를 쳐야 하는 사정이 있다면 그것은 지켜야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환호와 목책을 세운 이 마을에도 외부의 다른 집단이 탐낼만한 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남강유적 주거지 발굴지 인근에서 탄화미가 발견되었다. 강가에서 물채질을 한 결과 조나 수수 같은 곡물들이 검출되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이 시기에 보리 탄화미, 보리, 수수 등이 검출돼 보리농사가 이 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또다른 사실은 2500여년전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곡류를 먹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청동기시대 밭이 발견되었다. 밭은 두 개가 서로 어긋나게 이어지고, 한쪽 밭에는 구덩이를 파서 작물을 심고 다른 밭에는 씨를 뿌려 경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밭을 번갈아 가면서 경작을 했다. 땅힘을 키워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어긋나게 골을 파서 경작을 했다. 이렇게 경작한 밭의 규모는 3천여평. 이 넓은 땅에 보리와 수수를 경작했다면 이미 상당량의 곡물을 수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부의 축적은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심봉근 교수는 이에 대해 농경이 이루어지면 생산의 과다가 생길 수 있고 그 생산의 과다는 곧 빈부의 격차를 가져와 계급이 사회의 계층관계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계층관계는 한 지역에 있어서도 주민간 계급의 차이를 발생시키고 경작지를 확보하지 못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좋은 경작지를 가진 곳을 탐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호 전쟁이라는 것이 발발하게 된다.
남강가를 따라 3천여평의 밭을 경작했던 2500여년전의 남강마을. 멃은 밭에서 생산된 상당량의 곡식은 마을밖에 사는 다른 집단의 공격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이에따라 침략에 대비해서 식량과 마을을 지키려는 흔적은 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집에서도 나타난다.
석기를 만드는데 쓰는 일종의 숯돌인 지석과 만들다만 석기가 발굴되었다. 당시 마을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석기를 제작하는 공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돌로 만든 무기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집안의 공간을 분활해서 사용했다. 집자리와 작업공간 등 당시 상황에 필요한 공간을 따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묘지나 주거지를 통해 보면 지도자가 있고, 지도자 밑에 각기 분화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곳이 남강마을이었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분화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던 남강마을. 여기서 옥을 가공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집터에서 나온 옥 부스러기와 가공하다 부서진 옥조각이 그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옥가공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옥은 농기구나 무기같은 필수품이 아니라 장식품이다. 게다가 옥 원석을 가공해서 옥 하나에 구멍을 뚫는데 한나절이 걸릴 만큼 옥가공은 고도의 기술과 시간을 요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전쟁의 위험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옥을 가공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옥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옥은 청동기시대 분묘 유적에서 나타나는 신분, 사회계층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따라서 옥을 치장하는 사람, 이런 피장자의 경우에는 청동기시대에 있어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신분자이다.
남강마을의 배치는 그들 나름의 도시계획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특별한 계층을 위한 옥제작소가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반 토기를 만드는 석기제작소도 있었다. 작업에 따라 분업화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지배층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였다. 지배층은 필요에 따라 마을을 기능별로 나눈 것이다. 가족이나 혈연 중심의 사회구조가 계층중심의 사회로 옮겨간 것도 이 무렵의 일로 추정된다.
남강가 대평지역은 혈연적인 유대관계를 보이는 집의 구조가 지역공동체의 하나로 두 세 개가 모여 있는 것이 아니고 거의 분산돼 있다. 이는 혈연적인 유대관계가 붕괴되는데 이는 마을전체를 지배하는 우두머리 수장인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따라 혈연보다는 지역공동체 전체의 구조적인 관게를 중요시하게 되는 변화도 일어나게 된다. 그런 것들이 결국은 사회의 큰 변화를 야기하고 있지만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 때문에 혈연중심에서 지역공동체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호와 목책안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분업화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분업이 아니라 지배층의 통솔력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환호와 목책도 이런 마을의 질서속에서 만들어졌다.
대평사람들이 살던 집은 어떤 구조를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발굴된 유물을 통해 재구성해 볼 수 있다. 남강가 사람들이 살던 집은 땅을 판 바닥을 불처리해서 단단하게 하고, 먼저 중간에 두 개의 중심기둥을 세운다. 그런 다음 이 기둥을 중심으로 보조기둥을 세워 집을 지탱하게 했다. 그리고 이 위에 갈대로 집 전체를 감싼 것으로 추측된다.
집 내부에는 토기들이 있다. 토기는 요즘의 솥이나 식기용도로도 쓰였지만 곡식을 저장하는 그릇으로도 사용됐다. 그러니까 요즘의 부엌인 셈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제법 큰 돌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이른바 토기를 제작하는 작업공간이다. 바닥에는 작은 돌이 흩어져 있는데 옥돌이다. 전혀 가공이 안된 원석도 있으며 1차 세공과정이 이루어졌을 공간과 2차로 부분적인 세공을 하는 공간도 있다. 그리고 옆에는 사람이 들어가 앉을 만큼의 구덩이가 있는데 이것이 작업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이처럼 집 내부는 좁은 공간이지만 용도에 따라 일하는 구역이 잘 나뉘어져 있다.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은 무덤의 주인도 평소에는 이렇게 석기나 옥을 가공해서 만들고 밭을 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나가서 이 밭과 마을을 지키는 전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무덤의 주인뿐 아니라 당시 마을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무덤의 주인은 전쟁와중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목숨을 앗아간 원인은 화살촉이었다. 무덤에서 나온 부러진 화살촉을 통해서 어떤 화살에 맞았는지 당시 무기수준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이 맞았던 화살은 능형화살촉이다. 능형화살촉은 화살촉 가운데 가장 발달된 형태로 사다리꼴 모양이다. 이 화살촉은 이전시기의 화살촉에 비해 두껍고 크다. 양날을 날카롭게 세워서 다듬었는데 약 7백년뒤에 나오는 삼국시대의 화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단면이 능형인 화살촉은 화살촉보다 무게가 무겁고 규모면에서도 거의 1.5배에 이르는 것으로 파괴력은 더욱 컸다.
얇은 편육각형 화살촉과는 달리 크고 무거운 형태로 발전한 능형화살촉으로의 변형, 즉 이런 무기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청동기시대 중기가 되면 무거운 화살촉이 나타나는데, 이는 앞시기의 가벼운 화살촉보다는 강력한 파괴력을 요구하는 사회적 상황이 전제된다. 동물을 잡기 위한 도구라기 보다는 사람에게 좀 더 큰 충격과 피해를 줄 수 있는 전쟁과 관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