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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자연마을 탐방-오동
글쓴이 : 황경규 날짜 : 2010-03-12 (금) 03:47 조회 : 4531
역사는 시간의 물질을 계속한다. 한때 가난하고 어려워도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삶을 반복해서 우리 앞에 펼쳐 놓는 것이다. 오동(梧洞)마을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비만 오면 침수되는 재해위험지구지로 매년 벼농사의 수확을 할 수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덩어리지만, 다시 가을의 수확을 기대하며 땅을 일군다. 그것이 땅에 뿌리를 두고 사는 농민들의 진정한 삶이기 때문이다.
앞세운 소를 뒤따르며 써래질을 하고, 모를 심고, 밤낮없이 벼를 돌보지만 한순간 쓸어버리는 물난리 뒤끝에도 다시 논으로 발길을 돌린다.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물을 빼는 그런 쉼없는 고단한 삶의 연속선상에 언제나 서 있었다.
향양천 제방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땅이 옥토로 변한 오동마을의 들녘. 그래서 오동(梧洞)마을 사람들의 삶속에는 ‘다시 시작한다’는 끈기와 역경의 시간을 엿볼 수 있다.
덕오초등학교가 소재한 오동(梧洞)마을은 덕오리(德梧里)에서 행정리로 나누어진 마을이다. 2000년 10월31일 현재 84세대 338명의 주민들이 오이, 고추, 딸기, 수박 등의 시설채소를 재배하며 부농(富農)의 삶을 꿈꾸고 있다.
오동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기러기가 비상(飛翔)하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남강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상습 수몰지구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
남강댐이 건설되고 나서는 경지정리가 실시되고, 박토(薄土)였던 땅이 옥토로 변했고, 일찍부터 오이, 고추 등 고등채소 재배를 시작한 관계로 선진영농이 정착돼 여타 농촌마을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 부촌(富村)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동마을은 달골(月谷)․서잿골(書齋谷)․생골(新谷)․감골 등 네개의 작은 마을로 구성돼 있다.
달골(月谷)은 오동의 남쪽에 있으며 마을의 형상이 반달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달골에는 70% 이상이 기와집으로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며, 언제나 음지(응달)로 햇빛을 좀처럼 볼 수 없고 달만 보는 동네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서잿골은 서당(書堂)이 있었다 해서 서지골로 불리기도 했는데, 동네의 부유층 젊은이들이 모여 공부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동마을의 중심지인 생골은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감골은 글자 그대로 감나무가 많이 있어 감골이라 했고 수백년된 살구나무도 있었다고 전한다.
덕오리(德梧里)의 속명인 머골은 오동과 평촌의 옛이름으로 머귀나무가 많아 머귀나무골, 머귀골, 머골로 변천됐다.
특히 머골은 전쟁의 상처와 전염병 등이 근접하지 않아 마을사람들이 편하게 지냈다고 전하며, 뚝매산은 큰 산(山)의 줄기로 이어지지 않고 홀로 우뚝 솟아 있어 끈기와 고난을 헤치고 나온 오동마을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
오동마을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기러기가 비상을 하는 형상인 오동마을에 간이상수도를 매설하는 공사가 벌어졌는데, 그 장소가 바로 기러기의 목 부분이었다.
간이상수도가 들어서고 나서는 그 일대에 재앙이 끊이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마을주민들이 고로(古老)에게 연유를 물어본즉, 간이상수도가 기러기의 목부분에 위치해 피를 빼먹는 형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즉시 간이상수도를 폐공시키고 자리를 옮기자 재앙이 그쳤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광역상수도가 들어와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오동(梧洞)마을은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지난한 삶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소리로 삶의 버거움에 대해 악다구니를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동마을의 역사일 수 밖에 없었다.
농촌사람들이 점점 살길이 막막해지는 것에 대해 무작정 막힘없는 비판 정신을 쏟아내지 않지만, 신선하게 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마 오동마을 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동(梧洞)마을은 선진영농이 도입돼 현대화의 물결이 마을 깊숙히 파고 들었지만, 여느 농촌마을과 다름없는 평온함을 가지고 있다. 들녘의 풍성함과 하얀 비단처럼 들판을 덮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풍기는 느낌은 부촌(富村)마을,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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