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발원인 샘(泉)이 있는 산(山)마을엔 나무들이 발산하는 가장 깨끗한 공기와 새소리와 꽃향기, 그리고 나무열매가 있고, 숲과 강이 어우러지는 풍치가 있는 강(江)마을에는 풍부한 물과 고기가 있다.
산(山)마을의 넉넉함과 강(江)마을의 따뜻한 추억을 한데 품고 있는 죽산(竹山).
나즈막한 산(山)아래 마련한 삶터가 아늑하고, 삐거덕 삐거덕 나룻배의 정겨운 소리가 들리는 듯한 마을풍경이 겨울초입의 스산함을 덜어준다.
잊혀져 가는 우리 들녘의 회색 겨울 빛을 그리면서 시골 나들이길을 나섰다가, 가슴 한아름 포근한 정감을 안고 돌아올 수 있는 죽산(竹山)마을.
겨울은 눈이 와야 겨울답고, 옛추억에 잠기며 왠지 모를 뿌듯한 기대감을 주듯이, 죽산(竹山)마을은 옛날 종자 씨받이와 저녁 찬거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골 아낙들의 행복한 고민을 엿볼수 있는 곳이다.
일년 배삯으로 쌀 5되박이면 넉넉했던 나루터의 인심처럼 죽산마을은 산(山)의 생명력과 물(水)의 넉넉함을 동시에 가진 너무도 평범한 농촌마을이다.
죽산(竹山)은 신당리(新塘里)에서 행정리로 분리된 마을이다. 죽산의 유래를 보면,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뫼’라 불리다가 ‘대미’로 변했고, 다시 한자로 죽산(竹山)이라 표기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 10월31일 현재 84세대 291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시설채소로 넉넉한 삶터를 꾸리고 있다.
죽산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을의 수호신인 느티나무가 마을앞에 턱하니 버티고 서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이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 초입에 들어선 들녘에는 농부의 손길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들판을 하얗게 색칠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는 왠지 분주해 보인다.
대나무가 많았던 곳이라 군데군데 대나무가 보이고, 마을 신작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산뜻하게 단장한 집들도 눈에 뛴다.
죽산 남쪽 부흥덤 옆에 있는 부흥디미는 부엉이가 많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정겨운 마을이름이고, 죽산(竹山)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섬산(島山)인 섬암은 강(江)마을이 됐던 죽산의 옛기억을 품고 있다.
옛날 남강을 허리끊고 생겨난 북강(北江)이 있었을때 섬암사람들은 부흥더미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금산(琴山)을 왕래하곤 했다.
교통이 불편해 금산면 장사리와 연결된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이 부흥더미나루는 집현면의 온갖 소식을 들을 수 있던 곳이기도 했다.
도선장(渡船場)이라 이름붙이기에는 너무나 옛스러웠던 이 부흥더미나루터의 나룻배지기는 일년에 한번 배삯을 받았다고 한다.
일년 열두달 동안 편하게 나룻배를 타고 왕래하지만 가을걷이를 끝낸 주민들이 주는 삯은 쌀 4～5되. 굳은 살이 박히도록 나룻배를 손수 저어 손님을 실어다 주는 사공의 품삯치고는 적지 않았다.
산(山)과 함께 하는 삶을 가진 집현면으로서는 부흥더미나루와 나룻배가 가지는 특별한 인연을 품고 있는 죽산마을은 지금도 아스라한 옛기억을 떠올리는 고로(古老)를 쉽게 찾아 볼수 있다.
부흥더미나루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멀리 마을을 내려다 보면 300년은 훨씬 넘어보이는 소나무들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쟁이숲을 발견할 수 있다.
월아산(月牙山)에서 봤을때 사람의 눈섭처럼 생긴 이 대쟁이숲은 방풍(防風)의 역할을 했다. 마을 고로(古老)에 의하면 마을의 모습이 너무 황량해 보여서 이 소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죽산마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마을 주민들의 자랑이기도 한 이 대쟁이 숲은,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한여름 뙤약볕을 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쟁이숲과 이웃한 죽산 저수지는 해방이후 생긴 못으로, 인근 농경지의 농업용수원으로 맑은 물을 자랑하고 있다.
또 죽산마을에는 ‘백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寺)이 있었다는 백사골과 서재가 있어 이름붙여진 서재골, 고려장터가 있었다는 고려장골이 있다.
지난 1934년에 지어진 죽산교회가 대쟁이숲과 어울려 현대적인 내음을 물씬 풍기기도 하는 죽산마을의 앞길은 쭉뻗은 처녀의 다리처럼 매끈해 보인다.
겨울대지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세월의 바퀴를 굴려온 죽산마을의 들판은 또다시 새로운 수확을 잉태하려는 듯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듯 하다.
산(山)과 강(江)이 만나 만들어낸 죽산마을의 향기는 잘 닦여진 도로와 휴식에 들어간 넓은 들판의 고요함 처럼 세상사는 느낌이 배어난다.
마을의 한 고로(古老)에게서 죽산마을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 나오는 길은 향기롭고 그윽한 녹차 한잔을 마신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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