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때로는 온화하고 너그러워서 우리에게 한없이 풍요로움을 베풀지만, 방만함이나 분별없는 도전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일찌기 자연의 섭리와 그 속의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 처지를 파악해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산(山)에 갈때도 ‘산(山)에 든다’고 했지 ‘산(山)에 오른다’고 하지 않았다.
육중한 산(山)과 깊은 골(谷)이 어우러지면서 그 사이에 너그럽게 들(野)을 키워 내고 있는 신당(新塘).
그 산(山)과 들(野)과 골짜기(谷)는 여름의 모진 더위와 폭우를 잘 견뎌 받아내서 가을을 살찌우고, 겨울채비에 바쁜 농심(農心)도 그득해 지는 겨울초입의 신당(新塘)은 넉넉해 보인다.
용(龍)이 마을을 감싸 안은듯 신당(新塘)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볼때 용두설(龍頭說)의 형국을 지닌 마을로 주변 산세(山勢)가 수려(秀麗)하다.
계절이 바뀔때 마다 산은 더욱 살아 움직이고, 단풍으로 색동옷 차림을 했던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서 신당(新塘)의 산(山) 봉우리 주변은 이미 이파리를 다 떨궈 버리고 잿빛 겨울산으로 변하고 있다.
큰 산일수록 계절이 지나가는 몸놀림이 두드러져 날마다 산의 색깔과 내음이 달라지지만 갈티산과 탈월산(脫月山)의 산빛은 겨울을 앞둔 신당마을에 긴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듯 하다.
마을에 큰 못이 있어 신당(新塘)이라 했고, 본래 사죽면(沙竹面) 지역으로 2000년 10월31일 현재 인구는 199명이며 65세대가 벼농사와 수박, 고추, 배추를 재배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산하(山河)가 얼어붙고 물기가 마른 겨울 들녘 숨가쁜 여정에서 한줄기 옹달샘을 만나는 건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다.
신당마을에는 물좋고 정자그늘이 있어 쉬어 가지 않을 수없는 곳이 있다. 갈티산 자락에 자리한 갈티정자나무와 갈티새미는 ‘약새미’라고도 부를 정도로 맑은 물을 자랑한다.
갈티새미는 비록 실낱처럼 가는 물줄기일 망정 그것은 신당(新塘)의 대지가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정자나무는 신당사람들의 품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매년 정월 초순에 동신제(洞神祭)를 올리기도 하는 이 정자나무와 샘은 신당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성지(聖地)와도 같은 곳이다.
한번은 정자나무 아래에서 개를 잡았더니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끊이지 않았는데, 동신제를 지내고 나서는 마을이 평온해 졌다고 한다.
또 신당북쪽에 있는 갈티정자나무는 신당에 사는 석(石)씨가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령이 150년을 넘어 무더운 여름날의 뙤약볕을 피해가기에 안성맞춤이고, 마을사람들의 휴식터로 애용되고 있는 곳이다.
정자나무를 지나서는 길가에 비(碑)가 여러개 서 있어 비석거리라고도 불렀는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10여개의 비석이 남아 있기도 했다.
용(龍)이 마을을 감싸 안아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에 속하며, 약새미와 갈티정자나무가 있어 아늑한 고향분위기를 전하는 신당(新塘)은 일제시대에는 숱한 고초를 겪은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신당(新塘)마을 곳곳에는 일본군이 군수품을 저장하기 위해 파놓은 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2차대전 말기 패망을 앞둔 일본군이 총력전을 펴기 위해 포탄 등과 같은 군수품을 저장하기 위해 신당의 산아래에 굴을 많이 파 놓은 것이다.
신당마을에만 8개에 이르는 굴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주민들에 따르면 이 굴은 6.25동란때는 주민들의 대피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신당 중앙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매양골이라 하는데, 주민들은 ‘매인골’이라고도 부른다. 매인골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것은 옛날 ‘수찬’이라는 벼슬을 지낸 윤씨에 얽힌 전설에서 비롯됐다.
이 윤씨는 ‘수찬’이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어느날 벼슬을 그만 두면서 자신이 쓰던 도장을 담은 도장통(인통)을 골짜기에 묻었다고 해서 매인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옛날 북강(北江)이 나고 산허리가 끊어지고 나서는 신당에 인물이 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이후 윤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죽산(竹山)으로 옮겨가 살았다고 한다.
신당 북쪽에 있는 들인 합다리 굼터들은 골이 깊고 늪지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사타리굼터라고도 불렀는데 예전에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경지정리를 하면서 없어졌다.
신당입구에 있는 서중밖에들의 유래는 자세히 알길이 없고, 신당 남쪽의 마을인 웃담과 북쪽에 있는 새안골이 신당(新塘)의 역사를 간직하며 삶터로 남아 있다.
신당(新塘)에는 고분군(古墳群)이 출토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농경생활을 했음을 증명해 준다.
고분의 아래쪽에는 토성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곳이 일찍부터 사람들의 거주지(居住地)로 들어선 것은 아마 이 지역이 남강을 끼고 있어 농경지대로 적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당북쪽에 있는 산으로 공동묘지(共同墓地)가 있는 탈월산(脫月山)이 너른 들을 굽어 보고 있고, 용(龍)의 꼬리부분에 터를 잡은 신당(新塘).
일제강점기때 닦은 길이 많다는 신당가는 길에서, 도로를 휙휙 지나치는 자동차의 물결들이 실상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것은 한줄 마른 뼈로 엎드려 구름낀 세상을 낭패하며 바라보는 키작은 풀의 희망처럼, 신당(新塘)마을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회관에 둘러 앉아 신당(新塘)의 옛 기억을 더듬는 마을 고로(古老)의 고뇌하는 얼굴빛에서 키작은 풀이 희망했던 신당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