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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자연마을탐방-장흥
글쓴이 : 황경규 날짜 : 2010-03-12 (금) 03:41 조회 : 4216
의령(宜寧)가는 길(路)을 따라 나란히 이웃해 있는 장재못(長在池)과 서원못(書院池)을 굽어보는 사액(賜額) 신당서원(新塘書院)의 향기가 은은한 장흥(長興).
오래도록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흐르지 않는 듯 장구(長久)한 세월을 품어, 도로에서 날아오는 먼지조차 그 세월의 흔적을 덮지 못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나그네를 숙연케 한다.
그래서 장흥(長興) 가는 길은, 연못은 연못이되 바람의 힘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이 배어있고 주위의 모든 눈길에 ‘이곳에는 안식이 있다’는 한 줌의 평화를 담을 수 있는 곳이다.
강물의 흐름이 조금씩 변해가는 가운데 인심도 조금씩 사나워져 가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궤도를 수정해 가는 범인(凡人)의 삶을 닮아 있지는 않는 곳.
‘점심대접’ ‘약주대접’을 하겠노라고 쉽게 말하는, 그 인심에 때가 묻지 않아 문명의 혜택이 저만큼 비켜 간것이 보이지만 그리 야속해지지도 않는 곳이 바로 장흥(長興)이다.
집현면 우체국의 소재지인 장흥(長興)은 진주군 사죽면(沙竹面) 장흥동(長興洞)의 역사를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받은 곳이다.
1914년 진주군 사죽면 장흥동 각 일부로 장흥리(長興里)라 하여 집현면에 편입됐으며, 장흥(長興)은 2000년 10월31일 현재 65세대 215명이 삶을 가꾸고 있다.
사액(賜額) 신당서원(新塘書院) 사제문비각(賜祭文碑閣)의 역사향기와 달콤한 수박향을 함께 맡을 수 있는 장흥(長興)은 서원골(書院谷), 수의골(繡衣谷)에 터를 잡은 우리네 평균치 농촌과 농촌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신당서원 사제문비각이 있어 이름붙여진 서원마을과 유명한 돌다리가 있었던 강진마을, 그리고 옛날부터 큰 물난리를 겪을때 마다 부자가 생겨 났다는 수의골.
제각기 생겨난 까닭은 다르지만 그 오랜세월 길 옆에 자리한 마을이라 오히려 문명의 접촉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음에도 역사의 회랑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비록 작위적인 옛날 냄새가 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시대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어 매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흥(長興)마을.
수의골 서남쪽에 있었던 광진교(廣津橋)는 옛날 서울로 가는 대로에 놓인 다리였다. 다리 아래 물의 깊이가 명주꾸리 하나가 모자랄 정도로 깊고 맑은 물을 자랑했다.
장흥리와 냉정리의 경계에 있었던 석재(石材) 6쪽으로 만든 이 다리는 폭이 1m, 길이가 2m였는데 어떻게 다리를 놓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장흥마을의 명물(名物)로 입에 오르내렸던 이 다리는 1943년 고기를 잡으러 온 사람이 폭약(爆藥)을 터뜨려 그 자리에서 매몰되었다고 전한다.
피리장수에 얽힌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광진교(廣津橋)는 지금은 마을 앞 들판의 어디쯤이라는 짐작만 남아 마을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이 되고 있다.
광진교가 있었음직한 들판의 한 가운데를 지나치며 도착한 곳이 수의골(繡衣谷). 수의골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다. 장흥 본동이기도 한 수의골은 일명 시비골이라고도 불렸는데 한자(漢字)표기이다.
그런데 수의골은 옛날부터 큰 비가 내릴때마다 많은 피해를 받은 저지대에 속한 곳이었다. 그래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물에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가 수의골에 쌓여 ‘시비골’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지금 수의골의 많은 가구들은 집현면내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가계를 일구고 살고 있어, 고단했던 삶을 회상하는 고로(古老)의 얼굴에는 회환의 빛보다는 어려움을 이기고 견뎌낸 자부심을 엿볼수 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제일 살기좋은 곳으로 변했지. 수박 맛이나 보고 가시구랴”하는 고로(古老)의 얼굴이 밝았다.
장흥마을에는 수의골과 같이 어려운 시대에 살았던 삶의 흔적을 엿볼수 있는 곳이 많다.
미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도덕곡(道德谷)은 인가와 많이 떨어져 있어 한때 도적들이 많이 들끌었던 곳이었다고 전해지고, 연맷골(蓮實洞)은 장흥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해 두는 골짜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동멀리는 오동나무가 많이 있어 붙여진 들(野) 이름이지만, 부르는 만큼 감칠 맛을 느끼게 하는 장흥마을의 삶터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마을은 그렇게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며 지난한 삶을 꾸려오고 있었다.
장흥(長興)마을은 수박으로도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토양이 황토와 점질토로 돼 있어 수박의 당도가 매우 높고 부드러운 품질을 자랑해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지만, 지금은 호박과 수박전문 작목반이 구성돼 주키니호박과 수박농사가 농가의 주소득원이 될 정도로 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수박과 함께 장흥마을의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도토리묵이다. 아득한 옛날 산(山)과 인접한 어느 마을이든간에 산에서 나는 열매가 식량을 대신해 왔지만 장흥마을의 도토리묵은 특별하다.
한때는 쉽게 접할수 없었던 음식인 도토리묵은 명절이면 어김없이 상에 올려져, 마을어른들의 술안주로, 아이들의 간식으로 인기가 있었다. 인스턴트 식품이 난무하는 지금도, 어머니가 손수 만든 도토리묵은 장흥마을에서는 빠지지 않는 장수식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장흥마을은 명절이면 합동세배가 아직까지 행해지고 있으며, 마을 아낙들이 주가 된 ‘혼인계’는 다른 마을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로 잘 꾸려지고 있다.
장흥(長興)마을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살아온 발바닥의 무늬들이 보인다. 때로는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던 삶의 무늬들. 그래서 장흥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삶은 무겁고, 모질게 신발을 털어가며 가볍게 지나가려 해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까.
역사의 향기에 흠씬 취해 들어선 길끝에는 헤아려보면 아득해 보이는 지나온 시절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곳이 장흥마을이다.
사액(賜額) 신당서원(新塘書院) 사제문비각(賜祭文碑閣)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옆에서 말없이 흐르고 있는 서원못(書院池)과 장재못(長在池)의 푸른 물결이 삶의 편린(片鱗)처럼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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