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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자연마을탐방-정수
글쓴이 : 황경규 날짜 : 2010-03-12 (금) 03:40 조회 : 4340
삼천갑자 동방삭이 저승사자에게 잡혀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숯고개(炭峙)를 지나 잘 닦여진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면, 삼백 성상의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정겨운 정수리(亭水里)가 자리하고 있다.
진주~합천간 4차선 확포장 공사로 주위는 시끌벅적 하지만, 마을 앞을 지나는 실개천과 산을 병풍삼아 좌정(坐定)한 정수리 들마을은 평온해 보인다.
정수리(亭水里)는 진주군 모태곡면(毛台谷面동) 검정동(檢亭洞)과 철수동(鐵水洞)의 정(亭)과 수(水)를 따서 정수(亭水)라 했다.
검정동(檢亭洞)은 리동입구(洞里入口)에 정자(亭子)가 있었고, 주변산에서 숯을 구운 흔적이 발견돼 검적골이라고도 했고, 쇠의 녹물이 흐른 흔적과 제철소 흔적이 뚜렷이 있어 철수(鐵水)라 했다.
마을 앞은 도로 확포장 공사로 사람의 혼을 빼놓는 혼잡스러움이 있지만, 검정동 들말 입구의 고풍스러운 돌다리를 지나면,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왕버들과 느티나무가 좌우로 버티고 서 있어 아늑한 고향마을처럼 느껴진다.
산 아래자락에는 김영김씨, 함안조씨, 김해김씨 재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마을의 전통을 확인시키고, 드넓은 황금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곡식들이 추수를 기다리는 풍요와 결실의 땅, 정수(亭水).
용이 승천(昇天)하다가 떨어져 생겼다는 용디미가 우뚝하고, 미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은나무고개에 오르면, 정수리에서 최고로 넓은 논으로 유명한 닷마지논이 내려다 보인다.
정수(亭水)에는 2000년 10월31일 현재 86세대 221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담배(葉煙草), 밤을 주소득 작물로 평범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근래에는 딸기를 재배하는 가구가 생겨나기는 했지만, 엽연초(葉煙草)는 옛날 힘겨웠던 농촌살림에 큰 도움을 주었던 작물이기도 했다.
고(故) 조학명(趙學明)씨가 전파한 담배는 오늘날에도 많은 가구가 재배를 하고 있고, 조재승씨가 들여온 밤은 32년전인 1968년경 보급되기 시작해, 농가의 주소득원이 되었다.
육묘에서 부터 관리, 저장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연구와 보급으로 지금은 마을 젊은 사람들 모두가 접목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됐고, 냉동창고도 2개나 있어 마을의 주소득원임을 증명하고 있다.
들말 앞 도로변에는 속칭 ‘구르마방’이란 곳이 있었다. 이 구르마방은 당시의 정수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구르마방은 소달구지를 세워 두는 곳을 말하는데, 정수리 주변에 나즈막한 야산이 많아 동리산 땔감(薪木)을 해다가 진주시내에 많이 팔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정수리도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아 상습적인 침수지역이었으며, 변변한 먹거리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그런 어려운 시절에 나무를 해다가 진주시의 나무전거리로 내다팔면, 그나마 곤궁한 생활을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이다.
구르마방도 이같은 당시의 생활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소가 끄는 달구지에 나무를 해다가 내다 파는 물물교환 형태의 생업활동이 행해져 온 것이다.
이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정수리 관내에 있는 소류지 준설당시의 품삯이다.
정수리에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검적골저수지와 철수저수지가 있는데, 당시에는 이 공사를 ‘밀가루 공사’라 했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이 나와 저수지를 준설하면서 지게로 흙을 져다 나르고 하루 품삯으로 받은 것이 밀가루 3.6㎏이었던 것이다.
어느것 하나 풍족한 것이 없었지만, 가진 것 만으로도 만족해 하고, 주어진 생활환경에 순종하면서 논과 밭을 일구고 살아온 정수마을. 자연마을 곳곳에서는 이러한 삶의 내음은 한층 짙어진다.
내동은 정수리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내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숙부인 인천이씨 효열비(淑婦人 仁川李氏 孝烈碑)’가 서 있고, 마을입구에는 느티나무 세그루가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온 이 느티나무는 옛날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고, 주민들은 매년 동짓달 그믐날이면 동신제(洞神祭)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특히 동신제를 지낼때는 세군데서 제(祭)를 지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신성하게 여겨, 영구(靈柩)조차 이곳을 지나지 못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옛날 천연두가 창궐(猖獗) 했을 때에도 마을입구까지 병이 번졌지만, 느티나무를 지나 마을까지는 오지 못할 정도로 신성한 곳이었다.
지금은 마을 앞으로 길이 나면서 당산이 마을과 동떨어져 있지만, 아직도 이 당산을 비롯한 느티나무는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자, 신성한 곳으로 추앙받으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내동마을 뒷산에는 윤씨(尹氏)의 묘(墓)가 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볼때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가졌다해서 최고의 명당자리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내동마을에는 싸래들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싸래들은 내동마을 전방 200m지점에 있는 들판으로, 옛날에 윤씨가 상(喪)을 당하고, 묘를 쓰는데 조문객이 너무 많아, 쌀을 씻은 물이 마을을 지나 싸래들까지 흘러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순박한 인심과 당산의 신성함을 갖춘 내동마을은 마을 앞에 펼쳐진 논과 함께 하는 농민들이 대다수이지만 급속한 현대화 바람에도 마을의 전통을 잃지 않는 순수 토박이 골이다.
쇠(鐵)가 많아 철수(鐵水)라 불렸던 철수마을은 아직까지도 제련(製鍊)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인근 밭등에서 쇳물이 묻은 자국이 있는 돌이 발견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옛날에 제련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 옛날 서울로 가는 길이었던 국도변에는 샘이 하나 있는데, 고을의 원님이 지나다가 물이 좋아 쉬어 갔다는 전설이 있고, 아직도 샘터가 남아 있다.
현재 공사중인 4차선도로 확포장이 끝나고 나면 이 샘은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샘으로 가는 돌다리가 아직도 튼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 물이 흐리지 않고 여전히 깨끗해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수리(亭水里)는 면소재지 중심생활권으로서 봉강, 현동을 중심마을로 지내, 원동, 사촌, 기동 등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함은 물론 면전체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농촌정주생활권개발계획상의 정수마을은 1단계로 주택신축 등과 같은 농어촌주택정비 사업을 일차적으로 시행하고, 2단계인 2005년 이후부터는 마을기반정비사업의 하나로 마을내 도로와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버스승강장과 교량건설 등의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문화복지시설로는 1개소의 농어촌공원을 신설하고, 농로정비와 농산물선별시설과 저온저장고를 설치해 농어촌산업기반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농촌환경보전을 위해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고, 재해방지를 위해 하천정비를 실시해 면소재지 중심생활권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수리(亭水里)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내동의 초롱계와 같이 집집마다 쌀 한 되를 모아 상(喪)을 당하는 집에 3일동안 불을 밝혀주는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국도변을 따라 진행되고 있는 진주~합천간 4차선 확포장 공사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정수리는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와 풍요로운 들판처럼 넉넉한 고향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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