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축제, 진주의 10월
진주의 10월은 영욕의 역사로 빚은 유등(流燈)의 빛으로 넘실거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가 열리듯,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의롭게 순절한 7만 민.관.군의 넋이 형형색색의 등불로 되살아나 맵디매운 얼을 부여안고 흐르는 남강의 밤을 화려하고 환상적인 빛으로 수놓을 것이다.
올해는 추석부터 밝힐 예정이지만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남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2004 진주 남강 유등축제’는 1592년 10월 진주성대첩과 1593년 6월 계사순의(癸巳殉義)에 걸쳐 장렬하게 순절한 넋을 기리기 위해 연년세세 행해오던 유등놀이를 특화시킨 문화관광부 지정 문화관광축제로 천만인의 가슴을 비출 것이다.
‘유등’은 진주에서 생성된 순수한 진주의 말. 이미 상표등록이 돼 있어 다른 지역의 행사나 상표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즉 물과 불과 빛으로 색다르고 화려한 밤을 연출하는 유등은 진주 남강에서만 펼칠 수 있고 진주에 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고유 전통 민속으로 다른 곳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남강변에 독메로 우뚝 솟은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남으로 남강, 서쪽으로 나불천, 북으로 대사지(大寺池)에 둘러싸인 ‘물 속의 성’이었다. 어느 곳에서든지 물을 건너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는 구조의 천혜의 요새였다. 이 같은 지형으로 성이 고립되거나 적의 침공을 받을 때 성밖과의 군사신호와 통신수단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데서 유래 됐다고 전해진다. 또한 왜군의 도하를 저지하는 수단으로, 병사들이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방편으로 띄웠다고 한다.
이런 유래에 뿌리를 둔 전통성과 정통성을 지닌 유등은 우리나라 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 기간에 맞춰 행해오다 2000년부터 특화시켜 2002년 문화관광부 특성화축제, 2003년 예비축제에 이어 올해 지정축제로 껑충 뛰어 순수예술의 경연장으로 명성이 높은 개천예술제와 더불어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며 세계인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부터 세계 각국의 설계도면과 기술자, 조형예술가, 화가 등 50여명이 땀흘려 제작한 올 축제를 미리 들여다보면, 지난해 선보인 20m 높이의 중국 천단(天壇)등을 비롯하여 태국, 싱가폴, 인도, 남아프리카, 대만, 일본의 등 보수와 함께 새로 15m 높이의 이집트 파로스 등대, 캄보디아 인텔여신상, 네팔 인드라상, 미얀마 기린상 등 11개국 25기의 세계의 등을 만날 수 있다.
중?대형 한국등은 모두 340여기로 지난해 제작한 실제크기와 같은 진주성 정문인 15m 높이의 공북문을 비롯해 새로 만든 영남포정사와 황룡사 9층 석탑, 화엄사 석등 등 135기가 남강 수면과 하늘을 밝히며 고려청자, 거북, 목어, 장구, 십장생도, 귀면도 등과 강강수월래, 농악놀이, 투우, 윷놀이, 널뛰기, 씨름, 빨래터를 연출한 90기가 올해 처음으로 전통등 전시관에 전시돼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을 뽐낸다.
또한 시내 37개 읍?면?동 상징등과 시민과 출향인이 가정의 행복 등을 비는 소망등 1만2000개가 진주성을 형상화하고, 8개 고교생과 시민들이 만든 5000여개의 창작등으로 ‘등의 터널’을 만들고, 종교 참여등 21기가 둔치를 화려하게 밝히는 가운데 수만 개의 소망등을 강물에 띄워 보내는, 그야말로 황홀경을 빚어낸다. 안내판도 유도등도 쓰레기통도 모두 등불로 장식해 온통 ‘등의 천지’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진주성 촉석루를 비롯한 주요 건물을 일제히 손질, 기와를 새로 갈고 단청을 한데 이어 성벽 등에 야간조명을 설치해 기존의 진주교와 천수교 조명과 함께 유등 축제의 감동을 한층 더 자아내게 하고 있다. 또 기간 중에 열리는 전국 최대 규모의 민속투우대회와 실크패션쇼, 남인수가요제, 시민의 날 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만날 수 있어 일석이조의 감동과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이렇듯 해를 거듭하며 축제의 디딤돌 하나하나를 놓아가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축제의 성공이 엿보인다 해서 자만하기에는 이른 것이다. 저마다 내 것이요 우리 것이라는 자긍심으로 진주의 10월 유등축제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어 가는 일은 이제부터다.
 장일영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