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 박생광은 1904년 진주에서 태어나 1914년 진주 보통학교, 1917년 진주 농업학교에 입학했으며, 농업학교 재학 때 일본인 미술교사의 권유로 192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학업은 입천서운미술학교(立川栖雲美術學校)에서 3년간 수업을 마치고 23년에 경도시립회화전문학교(현재 경도예대)에 입학하여 미술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1937년 일시적으로 귀국하여 진주에서 여학교를 나온 강숙희 여사와 결혼을 하고 다시 일본서 활동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 진주로 돌아왔다.
당시 한국에 있던 일본인이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박생광의 미술세계를 존경한 나머지 진주에 있던 자신의 집을 전해주고 갔다. 박생광은 이 일본인 덕택에 초반에는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하게된다. 그 이후 차츰 부인의 생활 능력에만 의존하게 됨으로써 가세가 점점 어렵게 되자 집 앞부분을 수리하여 다방을 경영하게 되는데, 바로 청동다방이다.
청동다방은 진주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으며 전시도 자주 열었다.
“당시 진주 문화 예술인들의 모임 장소가 청동 다방이었습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다방엘 갔는데 항상 말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죠. 한때 제가 만화 전시회를 청동다방에서 열었습니다. 그때 내고는 저를 보고 잠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 미소짓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주문화사랑모임 리영달 회장은 60년대초 진주 청동다방에서 매일 만나다시피한 내고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전시회로 인한 수익금은 벗들과의 술값으로 소모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들과 수개월씩 바깥에서 놀다가 귀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설창수, 정명수 오제봉, 이경순 최재호 등 당시 진주 문화예술계의 내로라하는 사람들과의 교유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리영달 회장은 “한번은 이빨 치료를 위해 치과에 들렀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치료비를 내길래 사양을 했습니다. 얼마후 조그마한 소품을 한점 주길래 받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아는 사람에게 다시 선물을 했습니다.”내고의 작품을 잠시 소장했다가 다시 누군가에게 선물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리박사는 당시 내고의 그림은 일본 풍이 강해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내고를 잘 아는 한 진주 문화예술인은 “내고는 진주에서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어려운 생활로 말미암아 부인이 다방을 경영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진주 문화예술인들의 모임 장소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죠. 당시 개천예술제만 되면 전국의 문화 예술인들이 진주로 모여 들었고, 청동다방이 그 장소였습니다.”며“내고가 진주를 떠나게 된 것은 자의에 의해서라기보다 타의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죠. 청동 다방을 경영하던 부인이 내고의 뒷바라지를 하려다 어려운 일을 당해 진주를 떠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라며 내고가 진주를 떠나게 된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라는 것을 말했다.
당시 내고는 진주를 찾아오는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의 뒷바라지에만 신경을 썼지 가정일은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작품도 일본화풍이 너무 강해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내고는 일본화풍이 덜배인 모란 그림을 자주 그려 이를 팔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경영하던 다방도 팔아넘긴 후 진주에서의 생활난이 심해지자 1967년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내고의 작품세계 "촉석루 단청이 그림의 모태"

내고의 작품이 국내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1년, 그의 나이 77세 때 백상기념관에서 연 개인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내고는 채색도 석채만을 고집하지 않고 호분에 안료를 개어서 얼룩 효과를 살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벽화·불화 기법을 응용해 민화와 단청의 색감을 거부감 없이 살려내 적(赤) 청(靑) 황(黃) 녹(綠)색이 주조를 이루는 ‘원색적 힘’을 구가하는 또 다른 미감을 창조해 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내고는 백상기념관 전시를 마치고 1982년 2월에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 길을 따라 성지 순례를 했다. 도중 인도 뉴델리에서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1984년 4월에는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우리나라 무속과 민속을 소재로 대작전을 열었다. 이때는 선의 구성에 중점을 두고 서구적 미학을 가미한 회화성을 강조, 동양적 선묘와 강렬한 색채의 우리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아 마지막 예술을 꽃피웠다.
1983년 내고는 “촉석루가 있는 유서깊은 곳에서 논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족을 생각하고 고색 창연한 원색 단청을 늘상 생각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내 그림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아”라고 하면서 자신의 그림 세계가 고향 진주의 정신과 닿아 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이 시기 내고는 고향 친구 ‘청담스님’을 위해 대작을 남긴다. ‘청담 대종사’란 작품이다. 내고는 일본 유학 이전 진주 시절에 광복지사들의 근거지였던 곤양 다솔사에서 한용운, 김범부, 김법린 등 불교계 선배들과 교류, 민족혼을 일깨웠다. 내고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청담(靑潭, 속명 이찬호)스님보다 먼저 불문에 들었던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서예가 청남 오제봉 씨와 함께 진주 의곡사에 입산, 사미계를 받고 몇 개월 동안 불도를 닦다가 하산, 1920년에 일본 유학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 일을 놓고 진주 보통학교와 진주 농업학교의 동기 동창인 청담은 딸까지 두고 늦게(1926년) 승문에 든 자신의 일과 비교해 뒷날 “자네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곧잘 농담을 건넸다는 것이다.
내고는 불가와의 이런 인연 때문에 늘 마음 속의 빚을 갚으려고 애를 썼다. 자신이 보살심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그림에도 불심을 담았다. 그는 생전에 필생 사업으로 진주에 있는 청담 생가를 사서 청담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내고는 이 불사를 위해 청담사 대웅전에 걸 ‘청담스님’을 그려놓기도 했다.
내고는 1983년 ‘명성황후(민비)’를, 85년에 ‘전봉준(녹두장군)’을 그렸다. 일제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명성왕후를 화폭에 담아 역사적으로 왜곡된 수수께끼를 그림으로 풀어보자는 의도였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일련의 무속 계열의 작품이 처음 등장한 것도 1981년 이후이다. 1985년까지 16개의 ‘무속 시리즈’ ‘무룡도’, 6개의 ‘무당시리즈’ 등을 발표했다.
이같은 내고의 작업은 1985년 5월,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렸던 르 살롱전의 포스터로 채택돼 세계에 알려지면서 샤갈과 비견되는 평가를 받았다.
내고 박생광은 전통적인 진채 기법을 되살린 가장 한국적인 채색화가다. 내고의 투철한 창작 정신이 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박생광을 생각한다 (1)

지난 2월, 경기도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스페인에 ‘달리’가 있다면 한국의 경기도에는 ‘박생광’이 있다는 문화적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문화는 한 지역공동체의 정신적, 정서적 수준을 반영하는 내적 가치이다. 스페인이 달리를 사랑하는 만큼 경기도가 박생광을 아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서구문화에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문화의 역량과 가치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안목 때문이다. 이번에 경기도가 ‘박생광 100년전’을 통해 중앙 정부의 문화적 맹목(盲目)을 질타하는 통쾌한 문화행정을 펼쳤으면 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내고의 경우 그의 주요 작품 대부분을 소장중인 용인 이영미술관이 경기도의 지원으로 ‘박생광 탄생 100년전’을 착착 준비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박생광 탄생 100년전’은 이영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경기도박물관 공동주최로 추진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경기도가 주체적으로 나섰으면 한다.”라면서 경기도에서 내고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을 바랐다.
이 당시 불행히도 그의 고향 진주에서는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반면, 경기도에는 이영미술관을 중심으로 내고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중심에 김이환(金利煥·69) 이영 미술관장이 있다. 그는 진주사람으로 내고와 같은 고향이란 인연으로 내고를 만났고, 지금까지 내고의 작품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최근 내고 탄생 100주년을 맞아 ‘수유리 가는 길, 민족혼의 화가 박생광 이야기’를 펴낸 김관장은 “77년 국무총리실 조정관으로 있을 때였어요. 이전부터 한 점, 두 점 그림을 모아 왔었는데, 내고 박생광의 흑모란이 좋다는 얘기와 그분이 진주분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동향인이라 무턱대고 수유리 댁으로 찾아갔지요. 이후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셨던 영감께서 저한테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때부터 힘 닿는대로 전시회도 주선해드리고, 지인들한테 그림도 소개하고,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지냈어요”
그는 2003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박생광 특별전’을 주관하기도 했다. 오는 9월 17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이영 미술관에서 ‘내고 1백주년 기념전’을 열고 특별기획전을 비롯해 학술세미나 등 내고 작품세계 재조명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가질 예정으로 있다.
김관장은 지난 6월‘내고 1백주년 기념전’을 앞두고 진주를 찾았다. 기자와 지인들을 만나 진주시에서 동참을 해 주었으면 하는 의견을 밝혔으나, 안타깝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때 그는 “화가의 탄생 100주년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며 “달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스페인이 올해를 ‘달리의 해’로 선포한 것처럼 우리도 박생광 같은 거장의 100주년을 제대로 기념해야 진정한 문화국가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록 내고가 60년대말 고향 진주를 떠났지만, 비록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진주를 떠난 시절에 창작 되었지만, 분명 그는 촉석루의 단청을 보고 자란 진주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내고 박생광을 만나려면 경기도로 가야한다. 안타깝고 부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한편, 지난 4월 8일부터 6월 12일까지 서울 문화공간 스페이스씨(space c) 갤러리에서 ‘色, 그대로 박생광 전’을 열었고, 경남도립미술관에도 개관기념으로 박생광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고향 진주는 어떨까.


박생광을 생각한다 (2)

내고는 1981년 백상 기념관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향 진주를 찾는다. 내고의 고향 방문을 두고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은“유난히 찬란했던 그해 오월의 봄날은 재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전시회 뒤의 잔일들이 거의 수습되자 내고는 진주 나들이를 한번 하고 싶어했다.”며“그때까지의 긴 한평생에서 그에게 백상전만한 성취감을 안겨준 일은 짐작컨대 드물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내고 나이에도 금의환향이랄까가 있는 것이다. 그가 진주를 보고 싶어한 연유를 나는 그쯤으로 헤아렸다”라고 했다.
내고는 생애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시회를 마치고 진주를 찾아 “의곡사 우는 종이 가신님을 불러도/강물만 출렁출렁 내 가슴을 울리나”라는 ‘의곡사의 종소리’를 목놓아 불렀다고 한다. 진주에 온 내고는 비록 옛 벗들은 가고 없어도 추억이 담긴 의곡사, 청동 다방 자리, 촉석루 등을 둘러보고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김관장은 내고가 백상전을 끝내고 진주에 다녀오자 십년은 젊어진 듯이 보였다고 한다.
1983년 내고는“촉석루가 있는 유서깊은 곳에서 논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족을 생각하고 고색 창연한 원색 단청을 늘상 생각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내 그림 세계가 펼쳐진 것 같아”라고 하면서 자신의 그림 세계가 고향 진주의 정신과 닿아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내고는 1985년 7월 18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 진주에 묻히기를 원해 진주 미천면 복숭아밭 한구석에 영면하고 있다.
일찍 고향을 떠났지만, 평생 고향을 잊지 않았던 내고 박생광. 그가 태어난지 100년이 지난 지금 고향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올해 1월 26일자 경남일보는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내고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 및 (가칭)‘박생광 미술제’가 올해 안으로 진주에서 열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도했다.
진주의 문화 예술계는 묵묵부답이었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내고 갤러리’에서 소품전이라도 열자는 뜻있는 사람들의 제의가 있었지만, 진주예총, 진주미협을 비롯한 관련단체는 소극적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진주 예총이 앞장서서 ‘내고 기념전’을 준비 했지만,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관 일정과 도립미술관 개관 기념전 일정 등으로 말미암아 2004년을 사흘남겨 둔 12월 28일 내고 탄신 100주년 기념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2004년 12월 28일~2005년 1월 15일까지 고향인 진주에 있는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 예정으로 있는 ‘내고탄신 100주년 기념전’은 창원 도립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작품 70여점이 선보인다.
100호 작품 6점과 소품, 스케치, 습작품 등이 전시되는데 100호 작품으로는 ‘십장생 학’‘흰드신’‘토함산의 해돋이’‘금산사의 추녀’‘무속’2점 등이다.
이보다 앞서 200여점을 소장한 경기 용인시 기흥읍 이영미술관은 9월 17일~10월 31일 까지 특별전을 갖는다. 만년작을 비롯해 일본 유학시절부터 45년 귀국이후 60년대까지의 작품들이 연대순으로 전시하며, 18일 오전 10시에는 학술세미나도 열린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는 9월8일~24일까지 ‘박생광전’이 열리는데 고인이 평소 쓰던 물감, 붓, 벼루, 낙관 등도 전시되며, 11일 오후 2시 기념강연회도 열린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도 9월 9일~11월 4일까지 내고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내고 탄신 100주년을 맞이해 서울 경기등 지역에서는 기념전 개최 등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활발히 알리고 있는데, 고향 진주에서는 아직 조용하다.
지난 1월 27일자 경남일보 칼럼 ‘부끄러운 藝都진주’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인용한다.
“서울에서는 탄생 100년을 맞은 화가 박생광 선생을 기리는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누구인가. 자랑스런 진주사람이다. 왜 진주에서는 그를 잊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