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지역 원로들에게 듣는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라는 말이 이제는 새삼스럽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면서 항상 ‘우리’라는 말을 즐겨썼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옛 이야기처럼 들린다. 앞으로 ‘조상’이란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저윽이 걱정된다.
본보는 추석을 맞이해 감각적 영상문화에 길들여진 이땅의 젊은 세대들에게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했던 지역 원로들을 만나 추석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주〉

일시:2004년 9월 23일 오전 10시
참석자:김동렬(전 진주문화원장)
정태용(전 개천예술제 대회장)
장충석(추담장학재단 이사장)
조도영(진주 삼락회 회장)
사회: 허정기(전 진주문화방송 편성국장)
장소:진주 시니어 정보센터 사무실


▲사회=빠쁘신 와중에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지역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신문인 ‘경남일보’에서 추석의 참 뜻에 대해 어르신들께 좋은 말씀을 듣고자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우선 좋은 말씀 많이 부탁드립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우리 지역의 ‘원로’들입니다. 현재 원로라는 말을 두고 말들이 많은데, 평생 자기 고장에 살면서 고장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야 말로 진정 우리 고장의 원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60년전의 추석은 어떠했습니까.
▲장= 추석하면 뭐니 뭐니해도 ‘소싸움’이 생각납니다. 지금 소싸움을 두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서로 유치해 돈벌이를 하겠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추석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였습니다. 진주가 우리나라 소싸움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죠. 남강 백사장에서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소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것을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니다.
▲조=소싸움 하면 ‘문장한’이라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아마 진주에서 1년내내 싸움소를 길렀던 진주 소싸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당시 귀하디 귀한 소에게 삼을 먹이면서 길렀으니 “문장한 영감 소싸움 한다”고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죠. 남강 모래밭에서 했는데 도동 사람들은 지금 선학산 위에서 건너보기도 했습니다.
▲정=진주 소싸움 유명했죠. 지금은 예전처럼 전 시민이 즐기는 민속놀이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소싸움 뿐만 아니라 진주 씨름도 유명했죠. 소싸움은 그나마 명맥은 유지해오는 것 같은데, 씨름은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조=진주씨름 유명했습니다. 양윤식, 강두만 등 많은 장사들이 생각납니다. 도동 사람들은 추석이면 간이 비행장에 모여 씨름을 했죠.특히 강두만 선수는 올림픽 레슬링 선수로 출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허=예 그렇습니다. 오재영씨 같은 분은 기술이 당시 한국에서 최고라고 소문이 났죠. 박종복씨 같은 분은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인데, 아무튼 진주씨름 유명했습니다.
▲장=추석때면 마을마다 씨름이 반드시 열렸습니다. 그때는 체급도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붙어 최후의 승자가 황소를 탔죠. 정말 기억이생생합니다. 지금 민속 씨름이라고 하면서 명절때면 하는데, 그것보다 당시 마을마다 했던 지방시름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겁니다. 개천예술제때 지역 씨름 정도는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좋은 말씀입니다. 개천 예술제때 이를테면 도지사기 경남도내 시군 씨름 대회를 지금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추담 어르신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회=이제 추석을 맞이해 서양 문화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에게 진정한 추석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먼저 우정 어르신 한말씀.
▲김=추석은 농경사회 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실의 문화라고 할 수 있죠. 오곡백과가 익으면 반드시 조상께 먼저 올렸습니다. 이를 ‘천신’이라고 하죠. 추석 때는 반드시 조상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조상 차례도 안 모시고 가족끼리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면 안됩니다. 추석은 조상을 위하는 날입니다. 조상께 차례를 올리고 가무도 하고 하면서 즐겁게 보내야 합니다. 특히 추석에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살려 이를 꾸준히 계승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우정 어르신 말씀 참으로 금과옥조 같습니다. 조상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 지금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할 바른 정신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라고 할 수 있는 보릿고개 시절에도 조상께 올리는 차례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찐쌀을 조상께 올린 적도 있습니다. 추석 때는 반드시 햇곡식 햇과일을 조상께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국적불명의 곡식과 과일들이 우리 제삿상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국적불명의 곡식을 올리면서 조상들께 정성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죠. 옛날에는 못 살아도 인정은 있었습니다. 요즘 어떻습니까. 온가족이 모여 즐기기는 커녕 자기 식구만 챙겨 나들이 가고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세상이 험악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의 바른 민족입니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한 민족이기도 하죠.
▲조=조금전 우정이 말했듯이 추석의 의미는 조상을 섬기는 정신에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벌초도 안합니다. 대리 벌초가 유행하는데, 조상 묘소를 다른 사람이 벌초를 한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물론 여건이 안되어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가능하면, 가족들이 일년에 한번쯤 조상 묘소를 찾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김=서양의 추수 감사절은 지금도 그 전통이 잘 지켜져 옵니다. 그런데 우리 추석의 의미는 날이 갈수록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추석의 의미는 조상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조상은 고사하고 부모도 섬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문화는 항상 부모가 중심 축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앞에 말할때 ‘내처가’ ‘내아들이’이라는 말을 안씁니다. 반드시 ‘며느리가’‘손자가’ 라고 말을 해야 됩니다. 부모가 중심축에 있다는 증거죠. 소학에 ‘사처자(私妻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자기 처자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사람들 거의 대부분 ‘사처자’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여러 원로들의 말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이들에게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 계신분들은 모두 컴퓨터를 잘 다루는 분들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정보 문화에 뒤떨어진다는 고정 관념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데, 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사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또 은퇴해서는 나름대로 자기계발에 열중인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 그런 분입니다. 모쪼록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물질문명을 추구하려는 생각반의 반 만큼이라도 정신을 바르게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리:강동욱 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