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도(道)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설파한 장자(莊子. BC 365-290) 사상에서 삶의 교훈과 처세를 배우고자 한다. ‘대학별곡’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한때를 풍미했던 소설가 김 신이 내놓은 ‘장자, 임금을 베다’ (마음의고향 刊)는 그같은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10·26 사건, 박정희와 장준하의 관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회 등 장안의 화제가 됐던 현실속의 이야기를 꺼낸 뒤 장자의 글편에서 이들 이야기와 관련된 조언과 지혜를 찾아내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쉽게 읽힌다.
저자는 10·26 사건을 ‘쓸모 있으면 토사구팽, 쓸모 없으면 수명장수’라는 말로 풀어본다. 1976년 10월 26일 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쏘기 전에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쓸만한 애들 골라서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결국 총을 든 ‘쓸만한’ 이들은 김재규와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장자’ 에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볼품없는 나무가 천수를 누리고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은 꼽추만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 총명이 자신을 죽이는 도구가 된 재상들의 예와 견주어 볼 만하다.
코미디 황제 이주일 씨가 남긴 말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는 몸은 불구였으나 내면의 덕으로 칭송을 얻은 노(魯)나라 숙산무지(叔山無趾)를 떠올리게 한다.
장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덕이 뛰어나면 외모는 잊혀진다. 그러나 인간은 잊을 것은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잊는다” “일본군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이라면, 학도병을 탈출해 중경 임시정부를 찾은 나야말로 재야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던 장준하 선생과 박정희 대통령을 장자와 그의 벗 혜자(惠子)의 관계와 비교하면서, 진정한 맞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장준하 선생은 1975년 유신체제 아래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지만 장자는 혜자의 무덤 앞에서 “그가 살아있을 때는 변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이제 그가 없어 나를 상대해 줄 이가 없음”을 한탄했다고 한다.
저자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얘기를 ‘장자’ 에 등장하는 고사 당랑거철(螳螂拒轍)에 빗대어 꼬집는다. 노나라의 현자 안합(安闔)은 이렇게말한다. “사마귀(당랑)는 화가 나면 두 팔을 쳐들고 수레를 막으려고 하는데, 상대에 대한 판단은 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이 대단한 것만 알기 때문이오”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 사이에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의 달인’이란 별명을 들은 대통령은 ‘경멸감’을 느낀다며 발끈했고 검사들은 그들대로 긴장한 가운데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저자는 ‘말잔치’의 공허함을 경계하면서 말이 도를 가로막는다는 장자의 말을 인용한다. “거문고의 달인 소문(昭文)은 어느 날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손에 들지 않았다. 거문고를 통해 천지만물의 온갖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그가 거문고를 집어던진 까닭은 거문고를 통해 나는 소리가 온갖 우주의 소리를 가로막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온갖 소리는 오히려 거문고가 없어야 들을 수 있다.” 220쪽. 96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