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책의 寶庫’였다

우리가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와 전통이라는 옛 거울에 오늘의 우리를 비추어 봄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나아갈 바를 찾기 위함이다. 따라서 생명력을 지닌 역사와 전통은 세월의 이끼가 더해질수록 빛을 발한다. 이런 뜻에서 일찍이 ‘인재의 곳집’으로 빼어난 인물이 많기로 나라 안에 널리 이름난 고을이었던 진주가 ‘책의 보고’였다는 전통의 옛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을 읽지 않고 인물이 나기를 기대할 수 없듯이 많은 인물을 배출한 배경에는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대 사서 帝王韻紀 초간

진주와 책을 이야기하자면 지금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에서 풀어야 한다. 판각작업은 강화도의 대장도감과 남해의 분사대장도감에서 이루어졌다. 남해 분사대장도감은 당시 진주목의 행정관할구역이었다. 이 과정에서 판각기술이 축적되어 많은 책을 찍어낸 것이다. 분사대장도감에서는 대장경 이외에 문집도 간행하였다. 고려의 대표적 문신 이규보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그의 손자 이익배가 하동 감무로 있을 때 칙명을 받들어 간행하였다. 발문에는 진주목 부사 전광재 등이 열거되어 있다. 대장경 판각의 후원자였던 무신집정 진양공(晉陽公) 최이의 서자 만종이 단속사 주지선사로 있으면서 ‘선문첨송집’ 30권을 찍은 곳도 분사대장도감이었다.
이렇게 축적된 판각기술은 진주목과 사가(私家)로 확산되어 경사(經史) 문집 발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진주목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더불어 고려의 3대 사서로 꼽히는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칙령으로 초간하였으며, 문신 최해의 ‘졸고천백(拙藁千百)’을 비롯하여 ‘중용’, ‘주자혹문(朱子或問)’ 등을 간행하였다. ‘졸고천백’의 원본은 현재 일본에 있다.
사가판(私家板)으로는 원나라로부터 귀화한 설순의 시문집 ‘근사재일고(近思齋逸藁)’와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등이 있다. ‘근사재일고’는 설손의 아들 설장수가 진양 수령으로 있으면서 사재로 펴낸 것이며, ‘근사록집해’는 진주목사 이인민이 중국의 ‘근사록’을 목판본으로 복간한 것인데 현재 보물 제262호로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진주도호부사 김이음이 고려와 조선에 걸친 문신학자 권근이 초학자들을 위하여 지은 성리학 입문서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초간한 이후 두차례나 연거푸 진주에서 찍었다. 문신 변계량이 발문을 쓴 ‘입학도설’은 뒷날 퇴계 이황과 여헌 장현광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문익점의 ‘삼우당실기(三憂堂實記)’ 및 고려와 조선초 문신 강회백 강석덕 강희안의 3대에 걸친 ‘진산세고(晉山世藁)’를 비롯하여 하륜의 ‘호정집(浩亭集)’, 정이오의 ‘효은집(效隱集)’, 하연의 ‘경재집(敬齋集)’, 강희맹의 ‘사숙재집(私淑齋集)’ 등의 출간이 줄을 이었다. 더하여 남명 조식과 문인들, 그 문인들의 문인 등이 펴낸 문집 등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많다.
조선은 건국 후 교서관(校書館)을 설치하여 문적 도서 등을 관리하면서 중앙과 지방에서 각판한 책판의 보존 조사 파손방지와 유실 보완에 힘썼다. 이에 따라 지방관서에서 보유하고 있는 서명과 판수를 일일이 보고토록 하였다. 이를 토대로 만든 책 ‘고사촬요’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전 진주가 보유하고 있는 책판수는 전주 경주 평양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대한제국 시기에 창간된 경남일보의 등장도 이러한 전통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경남일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으로서 지방 최초로 근대 활판인쇄시설을 도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인쇄소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책을 찍어낸 출판사이기도 하다. 교육도시 진주의 뿌리나 연중 책의 출판이 끊이지 않는 것도 ‘책의 보고’였던 전통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진주책展 시도 신선

마침 도서출판 ‘사람과 나무’에서 책의 도시 진주의 명성을 되살리자며 ‘진주를 책 읽는 도시로 만들자’는 기치로 내달 15일부터 닷새동안 진주시청 1층 로비에서 ‘진주·진주 사람·진주 책 전’을 연다고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만 그 시도가 신선해 보인다.
‘가난한 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존귀해진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 나오는 말이다.
                                                                      장일영(객원논설위원)